
끊임없이 읽고 기록하라
공부하는 법, 글쓰는 법
중요한 글은 외워라
홍대용(1731~1783)
『실학자로 명성이 높은 홍대용은 그에게 독서의 방법을 물은 매헌 조욱종이라는
청나라의 청년에게 편지로 독서하는 방법 12조항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그대로 실천하기를
권유했다. 그 가운데 처음 조목은 이와 같다.
본래 기억하고 암송하는 가송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지만, 초학자로서는 기송을
버리면 더욱이 기댈 데가 없다. 그러므로 매일 배운 것을 먼저 정확하게 암송하되
음독에 착오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뒤에 비로소 서산을 세우고,
한 번 읽고 나서는 한 번 암송한다. 그 다음에 한 번 보고, 보고 난 다음에는 다시 읽어
모두 3, 40번 되풀이 하고 나서 그만 둔다. 한권이나 반 권을 다 배웠을 때에는 전에
배운 것까지 포함해 먼저 읽고, 그 다음에는 암송하고 보되, 각각 서너너덧 번
되풀이하고 그친다.
글을 읽을 때에는 소리 높이 읽어서는 안 된다. 소리가 높으면 기운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눈을 건성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눈을 돌리면 마음이 달아나기 때문이다.
몸을 흔들어서도 안 된다. 정신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글을 암송할 때 틀려서는 안 되고, 중복해서도 안 된다. 너무 빨라서도 안 되는데
너무 빠르면 조급하고 사나워서 맛이 짧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느려도 안 되는데
너무 느리면 늘어지고 방탕해져서 생각이 들뜨기 때문이다.
책을 볼 때에는 문장을 마음속으로 암송하면서 뜻을 곰곰이 생각하여 찾되, 주석을
참조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궁구한다. 한갓 책에 눈을 붙이기만 하고 마음을 두지 않으면
아무 이득이 없다.
위에 말한 세 조목은 나누어 말하면 다르게 보이나,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체득하기를 요구한 점에서는 같다. 모름지기 몸을 거두어 단정히 앉고, 눈은 책을
똑바로 보며, 귀는 거두어들이고, 수족은 함부로 놀리지 말며, 정신을 모아 책에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방법을 따라 쉼없이 해나가면 뜻과 맛이 날로 새로워져 저절로
무궁한 묘미가 생기게 된다.
(매헌에게 주는 편지)
실학자로 널리 알려진 홍대용은 전통적인 방법과 새로운 방법을 조화시킨 공부법을
제시했다. 그는 무조건 경전을 암송하기만 하는 전통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글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려 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의 집중이다. 정신을 집중해
내용을 파악하고 체득하여 글의 뜻을 조용히 음미하는 것이 그가 제시한 독서법의
핵심이다. 』
선비답게 산다는 것[푸른역사/안대희] 266쪽
선비의 삶이 응축된 독서문화
『근래에는 지금으로부터 800년 전 금나라의 문인 원호문(1190~1257)이 제시한
독서법이 관심을 끌었다. 원호문은 고려 중엽시기를 살다간 작가다. 그의 독서법은
‘시문자경’이란 저서에 수록된 <독서십법>에 요약되어 있다. 그 저서는 전하지 않지만
다행히도 조선 명종 때의 학자인 윤춘년이 간행한 ‘문단’이란 책에 내용의 일부가
전한다. 요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기사記事, 자기에게 필요한 중요한 사건의 대강을 기록해 둔다.
찬언纂言, 내 마음에 드는 글이 있으면 한 구절이든 두 구절이든 따로 기록해 둔다.
음의音義, 알기 어려운 어휘를 분류해 써놓는다.
문필文筆, 외워두면 좋을 문장을 따로 기록해 둔다.
범례凡例, 옛 작가가 쓴 독특한 문투를 사례별로 기록해 둔다.
제서관섭인용諸書關涉引用, 많은 작품들의 상관관계를 따져보고 그 본문을 적어둔다.
취칙取則, 인생과 사회생활에 쓸모 있을 옛사람의 행위 가운데 본받고 싶은 것을
따로 기록해 둔다.
시재詩材, 시를 쓸 때 이용할 일화나 말을 분류하여 기록해 둔다.
지론持論, 선배의 주장과 논리에 불만스러운 것이 있으면 자신의 견해를 첨가해 둔다.
궐문闕文, 내가 모르는 어휘나 옛 일 등을 모두 따로 기록해 둔다.
시와 문장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의 창작을 위한 독서 방법으로 누여겨 봐야 할 것이
너무 많다. 』
선비답게 산다는 것[푸른역사/안대희] 276쪽
홍대용(洪大容, 1781~1783)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서 본관은 남양, 자는 덕보(德保),
호는 담헌(湛軒)으로 목사 홍력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남양주 미호강변에 있는
석실서원에서 안동김씨 김원행으로부터 주자학을 수학하였다.
서구 과학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담헌은 북학파의 핵심이 되고 근대 개화사상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관직은 음보로 선공감감역으로 출발하여 사헌부감찰,
태인현감, 영천군수를 역임하였다.
담헌은 연행사절인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임명된 숙부 홍억의 자제군관으로 북경을
들러보고 ‘을병연행록’을 남겼으며 새로운 문화는 그에게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 과학지식에 푹 빠져 있던 담헌은 북경 연행길의 세계는 전혀 새로운 세계였다.
그리고 북경에서 만난 항주의 문인들인 엄성, 반정균, 육비 등과 사귀어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함께 논하였다. 한양에 돌아와서도 교류는 지속되었으며 그들을 통하여 변화하는
세계의 조류를 바라 보았다. 새로운 과학기술에 큰 관심을 기울인 담헌은 천문학 등
서양의 문물에 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였다. 서양 과학에 심취하게 되고 박학다식한
이면에는 다양한 책을 통한 독서로 새로운 문물을 습득하게 되여 천문학에 독보적인
위치에 서게 된다.
연경 방문시 만난 중국인 매헌에게 독서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자세히 12조 항을
설명하여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지금에 와서도 우리에게 크게 와 닿는 것이다.
모름지기 독서란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 지적 양식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학생들이 하는 공부와 과거의 선비들이 하는 독서론의 차이는 있어도
근본적인 방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입시교육, 경쟁에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하는 현대생활 방식이 큰 문제인 것이다. 담헌이 일 깨워준 12조항의 독서방법을 잘 새겨서 틈틈이 독서에 매진하여야 하겠다. 옛 글을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