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속 징용 4만1천명 피해 추산.."희생자 발굴.문제 제기 병행"
(도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숙부는 강에 뛰어들어 살았는데 아버지는 방공호에 남아있다가 그만.."
서울에 사는 김금란(71)씨의 부친 김봉석씨는 1945년 1월 고향인 경북 의성군에서 일본군 군속으로 징용돼 일본으로 끌려갔다. 김봉석씨는 도쿄 시바우라(芝浦) 해군시설 보급부에서 강제노동을 하다가 같은해 3월10일 도쿄대공습을 맞았다.
김씨는 공습에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숙소가 있던 도쿄 후카가와(深川)구(현재의 고토구)가 이전에 유곽이 있던 곳으로 창녀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사방을 강이나 바다로 둘러싸 놓은 곳이기 때문.
아버지가 숨진 뒤 6살이던 금란씨를 비롯해 남은 가족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었다.
김금란씨는 9일 도쿄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전쟁 희생자에게는 한국 정부가 보상금이나 위로금을 줬지만 일본으로 끌려가 공습 때 숨진 아버지는 위로받지 못했다"고 탄식했다.
무관심하긴 일본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도쿄대공습 사망자가 10만명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해 희생자 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하면서도 한국인 희생자들에겐 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다.
이 문제를 조사해온 "도쿄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단"(진상조사단)에 따르면 조선(한국)인 사망자는 1만여명으로 추정된다.
1945년 당시 일본에 끌려와 있던 조선인 9만7천명 중 절반가량인 4만1천여명이 공습 피해를 받은 것으로 추산되며 이들 피해자 중 4분의 1가량이 숨졌으리라는 것이다.
이들은 죽어서도 조국의 하늘 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일본 어느 곳에선가 잠들어 있다. 일본에서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강요당한 이들의 유골을 가족들조차 찾아내지 못한 탓이다.
그나마 진상조사단이 2005년 스미다(墨田)구에 있는 도쿄도 위령당에 있는 도쿄대공습 희생자 유골 4천18위(位)중에서 조선인으로 추정되는 유골 50여위 남짓을 찾아냈을 뿐이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달 27일에는 도쿄 고토(江東)구 문화센터에서 한국과 일본의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도쿄대공습 65돌 조선인 희생자 추도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또 공습 65년을 앞두고 일본 유력지인 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 등이 조선인 희생자에 대한 특집 기사를 게재하는 등 일본 사회에서도 조금씩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진상조사단 이일만 사무국장은 "2004년부터 유골 조사 작업을 벌여왔고 올해 처음으로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며 "앞으로 도쿄대공습 당시 조선인 희생자를 찾아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http://media.daum.net/foreign/view.html?cateid=1007&newsid=20100309093109893&p=yonh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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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모르는 사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