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한국과의 차이점!
50년간 대만은 일본에 의해 일본을 위해 지배받으면서, 일본은 대만 통치에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되었고 많은 경우 대만인들의 자유를 허용하는 방임주의적 통치를 채택하게 됩니다.
대만인의 일본화는 점진적이었으며 대만과 일본의 차이를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또한 청나라의 통치시기 대만은 단지 청나라를 지키기 위한 전선으로써의 역할만 부여받은 주변부 지역에 불과했지만 일본은 대만을 대륙으로의 세력확장의 거점이자 동남아 진출의 교두보로 대만을 다루었으며 대만의 쌀 사탕수수 농업을 근대화 해서 대만인들의 소득신장에 어느정도 기여를 하게 됩니다.
물론 대만이라고 반일적인 독립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만은 청일전쟁 이후 청나라가 물러가고 일본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대만민주국을 선포하기도 하지만 일본군의 강압적인 무력점령으로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 뒤 대만은 본토인과 별개의 독립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무력을 통한 독립운동을 펼치기도 하고 우리가 신민회 신간회를 통한 독립운동을 펼쳤던 것처럼 대만도 일본의 황민화 정책에 맞서 대만 문화 협회를 세웁니다.
대만과 우리가 다른점이 있다면 대만은 일본의 식민정책이 강압적이지 않았고 항일의병이 각지에서 일어났던 한국과는 달리 대만은 반일감정이 약했던 만큼 의회 설립을 통한 자치운동이 문화 독립운동의 주류를 이루었다는 점입니다. 이점은 한국의 온건 독립운동인 애국계몽운동과 비슷!
대만은 좌우의 대립으로 인해 대만민중당과 대만공산당으로 분열이 되었습니다.
중공에게 있어서 대만은 단지 주변의 변경지역에 불과했습니다.
부패한 국민당 정부는 오히려 식민통치를 했던 일본보다 착취와 수탈이 극심했고 일본 국유였던 많은 대만 영내의 시설과 기업들이 본토에서 넘어온 관료와 국민당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대만을 통치하는 17개 현시장 중에서 3곳만이 대만인 출신이었고 그나마 그 3명도 본토출신의 대만인이었습니다. 이런 점이 대만인들을 분노시켜서 대만 최대의 비극인 2.28 사태를 불러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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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사건
1945년 종전과 동시에 해방된 타이완인들은 일제의 착취에서 벗어나 조국 중화민국의 품안에서 따뜻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것으로 학수고대하고 타이완에 상륙하는 국민당 정부군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도 기다리던 조국의 군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일제식민통치 50년 동안 일제에 협력하고 교육받은 부일협력자로 오해한 데다 대륙의 자만심까지 겹쳐 타이완인을 멸시하고 핍박했다. 더욱이 국부군은 부정과 부패로 얼룩져 온갖 비리를 저지르며 악의적 폭력을 동원, 타이완인들을 마구 괴롭혔다. 이러한 학대와 폭거에 쌓이고 쌓인 타이완 민중들의 울분이 폭발했던 것. 그러나 그들은 잔인하고 악랄했다. 항의하는 민중들을 마구 학살하고 유린한 것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유학을 통해 신지식을 공부한 엘리트층이나 공직자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그 가운데는 현직 고등법원 판사와 고등검찰청 검찰관을 비롯한 중견 관료 및 교사들이 다수 끼어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장차 이들이 주동해서 국민당 정부에 조직적으로 저항할 세력이기 때문에 사전에 싹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희생된 인원은 대충 2만8000명으로 추산되고 있지만 정확한 숫자는 아직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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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그러므로 일제시대를 부정하면 일제시대 이전의 청나라 지배시절이나 일제지배이후 국민당 군대 지배시절을 긍정하는 논리모순이 생긴다
그래서 일제시대를 긍정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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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과 비슷한 예가 하나 있는데 소개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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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추억하는 ‘슬픈 라트비아’
‘소련·독일·소련’ 순 잇따라 점령
“스탈린보다 히틀러가 나았다”
반러 감정탓 나치기념행사 열어
발트해에 연한 소국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선 옛소련 해체로 독립한 이래 연례행사가 되어온 라트비아 나치군단 퇴역군인들의 시가행진이 벌어졌다. 21세기에 나치를 기념하는 공개행사에 서방 각국이나 러시아, 그리고 특히 유대인들은 경악한다.
그러나 시가행진에 휠체어를 타고 행진한 퇴역군인 아이바르스 오졸스(85)은 생각이 다르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전쟁에 참가하긴 했지만, 볼셰비키에 맞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나치 군복을 입고 소련군과 싸웠던 경험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는 전후 전범으로 붙잡혀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9년 세월을 보냈고, 두 발을 잃었다.
나치 독일은 1943~1944년 소련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14만6천명의 라트비아인을 징집해 ‘바펜 에스에스 라트비아군단’을 편성했고, 오졸스도 소련군과의 전투에 투입됐다. 1943년 3월16일은 군단 소속 2개 라트비아 사단이 소련군의 진격을 물리친 전투 기념일이다. 눈발이 날린 이날 시가행진에는 오졸스를 포함한 80대의 퇴역군인 350여명과 이들을 지지하는 2천여명이 참가했다.
이 연례행사는 라트비아의 불행한 현대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라트비아는 나치독일과 소련의 불가침조약에 따라 1940년 소련에 점령됐다가, 41년엔 나치 독일에 점령됐다. 44년 다시 소련에 점령당했지만,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해 2004년에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국의 회원국이 됐다.
1940~41년 소련점령기를 ‘공포의 시기’로 기억하는 라트비아인들은 “히틀러와 스탈린 모두 돼지새끼들이지만, 스탈린이 더 나빴다”고 말한다. 발틱3국 가운데 반러시아 감정이 가장 강한 라트비아에선 이런 생각이 일반적이다.
나치 점령 당시 라트비아 유대인 7만명의 95%가 학살됐고, 일부 라트비아인 부역자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과 주민 40%를 차지하는 러시아인들은 행사금지소송을 제기하고 반대시위를 벌이는 등 연례행진을 막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라트비아인들이 자신들을 나치 부역자가 아니라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한, 주변국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례기념행사는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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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역사도
청나라(중국)-일본-중국공산당
이러니 일본을 좋아할수밖에 없겠구나!
물론 일본을 좋아하는 대만인은 본성인 뿐이지만......
대만이 역사상 단한번도 주체적으로 살아본적이 없는
불행한 노예의 역사때문에
일본을 긍정 할수 밖에 없는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