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은 일본에게 빌린 돈(강제로 일본이 빌려줌)을 갚기 위한 운동이다.
1907년(융희 1) 2월 대구에서 발단된 주권수호운동(主權守護運動).
그 예로- (네이버 백과)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일제는 이 운동을 극력 탄압 금지하였으며,송병준(宋秉畯) 등이 지휘하던 매국단체인 일진회의 공격과 통감부에서 국채보상기성회의 간사인 양기탁을 보상금 횡령이라는 누명을 씌워 구속하는 등 방해로 인해 더 이상 진전없이 좌절되었다. -
조선 시대의 1년 예산은 500만원이였지만,
일제는 조선에게 강제로 1500만원을 빌리게 했다.
그것을 빌린 것은 일본인. (조선의 재정 관리)
그것을 갚지 못하면, 일본에 예속화가 되기 때문에, 서민의 조선인들은 1원씩 모아서 몇 일만에 600만원이 모였다.
그런데 일제는 그것을 막기 위한 구실이 없었다. 그래서 신문에, 보상금 횡령이라는 누명을 씌우고, 국채보상운동의 열기가 식은 후에, 다시 횡령한 사실이 아니라고 아주 작게 보도한다.
그러한 방법으로 일제의 탄압이 이루어졌다.
여기의 일본인은 이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
한국인이 반일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만.
이 사건 말고도 많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