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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전 총리 "한일병합은 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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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하토야마(鳩山) 정부가 적극적인 아시아 외교를 표방하고 있다.

"아시아를 무시해서는 일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이 나와 논의되고 있는 단계이므로 그런 방향으로 눈을 돌려 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전과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자세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_100년 전 한일강제병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당시로서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일본이 한국을 100년 전 합병했지만 1945년 포츠담선언 이후 일본은 패하고 대한민국이 건국됐다. 총리로서 1995년 8월 15일 담화를 통해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각국의 국민들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안겼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죄를 표명해 앞으로는 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 않겠으며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겠다는 지침을 냈다. 과거의 역사를 현실로 인정해 식민지 지배는 나빴다, 침략 전쟁은 잘못이었다는 것을 표명한 것이다. 그러한 역사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생각한다."

_무라야마 담화의 정치ㆍ외교적인 의미는.

"담화가 나온 해는 전쟁이 끝나고 꼭 50년째 되는 해였다. 당시에는 역사인식에 대해서도 이른바 일치된 (일본의)국론이 없었다. "그 전쟁은 식민지해방전쟁이다. 전쟁을 통해 모든 식민지가 해방되지 않았나. 유럽이 아시아를 쳐들어와서 식민지화하는 것을 막고 아시아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전쟁을 높이 평가하는 역사학자도 있었다. 하지만 담화는 "식민지 지배와 전쟁은 잘못이었다. 아시아인들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안겼다. 이런 일을 다시 해서는 안 된다"는 역사관을 내각의 의견으로 결정해서 정부의 방침으로 낸 것이다. 처음으로 일본 국내의 역사관을 통일했다는 데 매우 큰 의미가 있다."

_담화 발표 당시 저항은 없었나.

"마음 속으로는 반대한 사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반대 의견을 표시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만장일치로 각의가 정했다는 것은 그만한 국민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대다수가 납득했다고 본다. 다만 일본은 사상, 언론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지금도 그런 방침에 반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_무라야마 담화는 일본 정부 아시아 외교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담화가 아시아 외교의 기본이 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민주당 정권을 포함해 담화 발표 이후의 모든 정권이 이 방침을 계승하고 있다. 고이즈미 전 총리 등이 야스쿠니에 참배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 역사교과서 문제 등도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래도 역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은)잘못이었다고 내각은 말하고 있고 역사교과서도 기준을 정해서 수정하고 있다. (식민지 지배나 전쟁을 합리화하는)그런 의견이 아직 있지만 나라를 움직일만한 큰 힘은 아니다. 대다수는 담화를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_한일 관계가 좋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독도영유권은 어떻게 접근해가야 좋은가.

"영토문제는 어려운 문제다. 다케시마(竹島ㆍ독도의 일본명)는 권리를 다투고 싸우기보다 일본과 한국이 어떻게 하면 서로 협력할 수 있을까 하는 시각으로 함께 성의를 갖고 이야기를 해나가면 어떤 형태로든 합의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면 다케시마라는 섬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어업권 문제가 있지만 이것을 한국에도 이익이 되고 일본에도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성의를 갖고 논의해 나가면 합의점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을 해주기를 바란다."

_우익 역사교과서 문제도 때만 되면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는 장애물이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검정의 단계에서 잘못을 수정해 나갈 수 있는 것이 하나의 해결 방법이고 또 그런 (우익)교과서가 나와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그것을 채택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은 채택률이 낮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아직 시민들의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시민의 힘이 중요하다."

_하토야마 정부는 야스쿠니 신사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추도시설 설립 검토를 밝혔는데.

"야스쿠니 신사는 종교법인으로 존재해야 하지만 전쟁을 높이 평가해서 전의를 고양하기 위해 야스쿠니가 공헌했다는 역사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 역사적인 문제를 없애기 위해 새로운 형태로 위령할 수 있도록, 당파와 종파를 넘어서 세계의 모든 사람이 참배할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부터 검토해 온 것이지만 실현이 쉽지 않았다. 간단히 성사되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방향으로 검토해 나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_한일 양국의 문화, 청소년 교류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오부치 당시 총리와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정치로서는 과거를 묻지 말고 미래를 지향하자, 함께 협력해 나가자는 의미의 선언을 했다. 문화 개방, 교류도 개선했다. 그 이후로 영화, 음악 등 여러 문화 분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그런 것을 통해 양국이 이해의 폭을 넓혀 왔다. 그런 교류가 일한관계에 매우 큰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만큼 상처가 깊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쳐 나가는 노력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

_양국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무엇이 중요한가.

"경제는 (외교문제와 특별히)관계없이 교류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교류해서 상호 우정을 쌓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 세대들이 미래를 걸머지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의 문제이다. (양국이)사이가 좋아져서 서로 소중한 관계가 돼 앞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한국에 이익이면 일본에도 이익이고, 일본에 이익이면 한국에도 이익인 그런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일한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을, 아시아 전체를 포함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_최근에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이제는 정치가가 아니니까 정당 활동을 정식으로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과거의 전쟁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일본 평화헌법만은, 특히 헌법 9조는 지켜야 한다는 활동을 하고 있다. 헌법 개정은 결국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이 문제를 자각해 헌법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마지막 남은 일로 생각하고 있다. 여러 단체가 있어서 거기에 협력하고 있다."

_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일본 전 총리로서 한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100년이 지나는 동안 좋지 않은 시기도 있었고 한국인의 의지를 무시해서 식민지 지배를 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대를 청산해 나가면서, 단순히 잊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으로 청산을 해서 손 잡아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100년의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그것을 기반으로 상처를 치유해 나가려는 노력을 진심으로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려고 하는 일본인의 노력을 정당히 평가해 주어서 서로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면 좋겠다."

85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말투는 또박또박했다. 건강의 비결을 물었다. 웃으며 그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난하면 무엇이든 자기가 움직여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머리도 써야 하고, 손발도 써야 하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사치스런 것은 못 먹으니까 생선이나 야채에 소식(小食)을 하게 된다." 징병으로 전쟁에 참여한 마지막 총리 무라야마의 "평화주의"는 "가난"이라는 정신적 가치와도 맥이 닿아 있었다.

_하토야마(鳩山) 정부가 적극적인 아시아 외교를 표방하고 있다.

"아시아를 무시해서는 일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이 나와 논의되고 있는 단계이므로 그런 방향으로 눈을 돌려 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전과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자세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_100년 전 한일강제병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당시로서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일본이 한국을 100년 전 합병했지만 1945년 포츠담선언 이후 일본은 패하고 대한민국이 건국됐다. 총리로서 1995년 8월 15일 담화를 통해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각국의 국민들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안겼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죄를 표명해 앞으로는 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 않겠으며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겠다는 지침을 냈다. 과거의 역사를 현실로 인정해 식민지 지배는 나빴다, 침략 전쟁은 잘못이었다는 것을 표명한 것이다. 그러한 역사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생각한다."

_무라야마 담화의 정치ㆍ외교적인 의미는.

"담화가 나온 해는 전쟁이 끝나고 꼭 50년째 되는 해였다. 당시에는 역사인식에 대해서도 이른바 일치된 (일본의)국론이 없었다. "그 전쟁은 식민지해방전쟁이다. 전쟁을 통해 모든 식민지가 해방되지 않았나. 유럽이 아시아를 쳐들어와서 식민지화하는 것을 막고 아시아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전쟁을 높이 평가하는 역사학자도 있었다. 하지만 담화는 "식민지 지배와 전쟁은 잘못이었다. 아시아인들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안겼다. 이런 일을 다시 해서는 안 된다"는 역사관을 내각의 의견으로 결정해서 정부의 방침으로 낸 것이다. 처음으로 일본 국내의 역사관을 통일했다는 데 매우 큰 의미가 있다."

_담화 발표 당시 저항은 없었나.

"마음 속으로는 반대한 사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반대 의견을 표시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만장일치로 각의가 정했다는 것은 그만한 국민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대다수가 납득했다고 본다. 다만 일본은 사상, 언론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지금도 그런 방침에 반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_무라야마 담화는 일본 정부 아시아 외교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담화가 아시아 외교의 기본이 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민주당 정권을 포함해 담화 발표 이후의 모든 정권이 이 방침을 계승하고 있다. 고이즈미 전 총리 등이 야스쿠니에 참배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 역사교과서 문제 등도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래도 역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은)잘못이었다고 내각은 말하고 있고 역사교과서도 기준을 정해서 수정하고 있다. (식민지 지배나 전쟁을 합리화하는)그런 의견이 아직 있지만 나라를 움직일만한 큰 힘은 아니다. 대다수는 담화를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_한일 관계가 좋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독도영유권은 어떻게 접근해가야 좋은가.

"영토문제는 어려운 문제다. 다케시마(竹島ㆍ독도의 일본명)는 권리를 다투고 싸우기보다 일본과 한국이 어떻게 하면 서로 협력할 수 있을까 하는 시각으로 함께 성의를 갖고 이야기를 해나가면 어떤 형태로든 합의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면 다케시마라는 섬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어업권 문제가 있지만 이것을 한국에도 이익이 되고 일본에도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성의를 갖고 논의해 나가면 합의점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을 해주기를 바란다."

_우익 역사교과서 문제도 때만 되면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는 장애물이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검정의 단계에서 잘못을 수정해 나갈 수 있는 것이 하나의 해결 방법이고 또 그런 (우익)교과서가 나와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그것을 채택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은 채택률이 낮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아직 시민들의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시민의 힘이 중요하다."

_하토야마 정부는 야스쿠니 신사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추도시설 설립 검토를 밝혔는데.

"야스쿠니 신사는 종교법인으로 존재해야 하지만 전쟁을 높이 평가해서 전의를 고양하기 위해 야스쿠니가 공헌했다는 역사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 역사적인 문제를 없애기 위해 새로운 형태로 위령할 수 있도록, 당파와 종파를 넘어서 세계의 모든 사람이 참배할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부터 검토해 온 것이지만 실현이 쉽지 않았다. 간단히 성사되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방향으로 검토해 나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_한일 양국의 문화, 청소년 교류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오부치 당시 총리와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정치로서는 과거를 묻지 말고 미래를 지향하자, 함께 협력해 나가자는 의미의 선언을 했다. 문화 개방, 교류도 개선했다. 그 이후로 영화, 음악 등 여러 문화 분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그런 것을 통해 양국이 이해의 폭을 넓혀 왔다. 그런 교류가 일한관계에 매우 큰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만큼 상처가 깊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쳐 나가는 노력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

_양국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무엇이 중요한가.

"경제는 (외교문제와 특별히)관계없이 교류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교류해서 상호 우정을 쌓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 세대들이 미래를 걸머지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의 문제이다. (양국이)사이가 좋아져서 서로 소중한 관계가 돼 앞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한국에 이익이면 일본에도 이익이고, 일본에 이익이면 한국에도 이익인 그런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일한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을, 아시아 전체를 포함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_최근에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이제는 정치가가 아니니까 정당 활동을 정식으로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과거의 전쟁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일본 평화헌법만은, 특히 헌법 9조는 지켜야 한다는 활동을 하고 있다. 헌법 개정은 결국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이 문제를 자각해 헌법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마지막 남은 일로 생각하고 있다. 여러 단체가 있어서 거기에 협력하고 있다."

_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일본 전 총리로서 한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100년이 지나는 동안 좋지 않은 시기도 있었고 한국인의 의지를 무시해서 식민지 지배를 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대를 청산해 나가면서, 단순히 잊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으로 청산을 해서 손 잡아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100년의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그것을 기반으로 상처를 치유해 나가려는 노력을 진심으로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려고 하는 일본인의 노력을 정당히 평가해 주어서 서로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면 좋겠다."

85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말투는 또박또박했다. 건강의 비결을 물었다. 웃으며 그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난하면 무엇이든 자기가 움직여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머리도 써야 하고, 손발도 써야 하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사치스런 것은 못 먹으니까 생선이나 야채에 소식(小食)을 하게 된다." 징병으로 전쟁에 참여한 마지막 총리 무라야마의 "평화주의"는 "가난"이라는 정신적 가치와도 맥이 닿아 있었다.

 

_하토야마(鳩山) 정부가 적극적인 아시아 외교를 표방하고 있다.

"아시아를 무시해서는 일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이 나와 논의되고 있는 단계이므로 그런 방향으로 눈을 돌려 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전과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자세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_100년 전 한일강제병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당시로서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일본이 한국을 100년 전 합병했지만 1945년 포츠담선언 이후 일본은 패하고 대한민국이 건국됐다. 총리로서 1995년 8월 15일 담화를 통해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각국의 국민들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안겼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죄를 표명해 앞으로는 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 않겠으며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겠다는 지침을 냈다. 과거의 역사를 현실로 인정해 식민지 지배는 나빴다, 침략 전쟁은 잘못이었다는 것을 표명한 것이다. 그러한 역사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생각한다."

_무라야마 담화의 정치ㆍ외교적인 의미는.

"담화가 나온 해는 전쟁이 끝나고 꼭 50년째 되는 해였다. 당시에는 역사인식에 대해서도 이른바 일치된 (일본의)국론이 없었다. "그 전쟁은 식민지해방전쟁이다. 전쟁을 통해 모든 식민지가 해방되지 않았나. 유럽이 아시아를 쳐들어와서 식민지화하는 것을 막고 아시아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전쟁을 높이 평가하는 역사학자도 있었다. 하지만 담화는 "식민지 지배와 전쟁은 잘못이었다. 아시아인들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안겼다. 이런 일을 다시 해서는 안 된다"는 역사관을 내각의 의견으로 결정해서 정부의 방침으로 낸 것이다. 처음으로 일본 국내의 역사관을 통일했다는 데 매우 큰 의미가 있다."

_담화 발표 당시 저항은 없었나.

"마음 속으로는 반대한 사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반대 의견을 표시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만장일치로 각의가 정했다는 것은 그만한 국민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대다수가 납득했다고 본다. 다만 일본은 사상, 언론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지금도 그런 방침에 반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_무라야마 담화는 일본 정부 아시아 외교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담화가 아시아 외교의 기본이 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민주당 정권을 포함해 담화 발표 이후의 모든 정권이 이 방침을 계승하고 있다. 고이즈미 전 총리 등이 야스쿠니에 참배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 역사교과서 문제 등도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래도 역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은)잘못이었다고 내각은 말하고 있고 역사교과서도 기준을 정해서 수정하고 있다. (식민지 지배나 전쟁을 합리화하는)그런 의견이 아직 있지만 나라를 움직일만한 큰 힘은 아니다. 대다수는 담화를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_한일 관계가 좋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독도영유권은 어떻게 접근해가야 좋은가.

"영토문제는 어려운 문제다. 다케시마(竹島ㆍ독도의 일본명)는 권리를 다투고 싸우기보다 일본과 한국이 어떻게 하면 서로 협력할 수 있을까 하는 시각으로 함께 성의를 갖고 이야기를 해나가면 어떤 형태로든 합의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면 다케시마라는 섬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어업권 문제가 있지만 이것을 한국에도 이익이 되고 일본에도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성의를 갖고 논의해 나가면 합의점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을 해주기를 바란다."

_우익 역사교과서 문제도 때만 되면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는 장애물이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검정의 단계에서 잘못을 수정해 나갈 수 있는 것이 하나의 해결 방법이고 또 그런 (우익)교과서가 나와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그것을 채택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은 채택률이 낮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아직 시민들의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시민의 힘이 중요하다."

_하토야마 정부는 야스쿠니 신사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추도시설 설립 검토를 밝혔는데.

"야스쿠니 신사는 종교법인으로 존재해야 하지만 전쟁을 높이 평가해서 전의를 고양하기 위해 야스쿠니가 공헌했다는 역사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 역사적인 문제를 없애기 위해 새로운 형태로 위령할 수 있도록, 당파와 종파를 넘어서 세계의 모든 사람이 참배할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부터 검토해 온 것이지만 실현이 쉽지 않았다. 간단히 성사되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방향으로 검토해 나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_한일 양국의 문화, 청소년 교류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오부치 당시 총리와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정치로서는 과거를 묻지 말고 미래를 지향하자, 함께 협력해 나가자는 의미의 선언을 했다. 문화 개방, 교류도 개선했다. 그 이후로 영화, 음악 등 여러 문화 분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그런 것을 통해 양국이 이해의 폭을 넓혀 왔다. 그런 교류가 일한관계에 매우 큰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만큼 상처가 깊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쳐 나가는 노력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

_양국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무엇이 중요한가.

"경제는 (외교문제와 특별히)관계없이 교류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교류해서 상호 우정을 쌓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 세대들이 미래를 걸머지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의 문제이다. (양국이)사이가 좋아져서 서로 소중한 관계가 돼 앞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한국에 이익이면 일본에도 이익이고, 일본에 이익이면 한국에도 이익인 그런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일한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을, 아시아 전체를 포함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_최근에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이제는 정치가가 아니니까 정당 활동을 정식으로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과거의 전쟁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일본 평화헌법만은, 특히 헌법 9조는 지켜야 한다는 활동을 하고 있다. 헌법 개정은 결국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이 문제를 자각해 헌법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마지막 남은 일로 생각하고 있다. 여러 단체가 있어서 거기에 협력하고 있다."

_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일본 전 총리로서 한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100년이 지나는 동안 좋지 않은 시기도 있었고 한국인의 의지를 무시해서 식민지 지배를 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대를 청산해 나가면서, 단순히 잊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으로 청산을 해서 손 잡아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100년의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그것을 기반으로 상처를 치유해 나가려는 노력을 진심으로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려고 하는 일본인의 노력을 정당히 평가해 주어서 서로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면 좋겠다."

85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말투는 또박또박했다. 건강의 비결을 물었다. 웃으며 그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난하면 무엇이든 자기가 움직여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머리도 써야 하고, 손발도 써야 하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사치스런 것은 못 먹으니까 생선이나 야채에 소식(小食)을 하게 된다." 징병으로 전쟁에 참여한 마지막 총리 무라야마의 "평화주의"는 "가난"이라는 정신적 가치와도 맥이 닿아 있었다.

또 “한국인들이 일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자체를 부정할 수만은 없다.”면서 담화 이후 일본 측에서 보여준 망발이나 망언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특히 “한일병탄조약은 역사적 배경으로 미뤄 ‘부당한 조약’”이라고 단언했다.

번역문보기

村山前総理 ¥"韓日併合は不当¥"

 

_鳩山(鳩山) 政府が積極的なアジア外交を標榜している.

アジアを無視しては日本が存在しないと思う. 幸いに東アジア共同体構想が出て論議されている段階なのでそんな方向で目を向けてアジア全体の平和と安全と発展のために積極的に協力する姿勢に進むことは非常に良いと思う.

_100年前韓日強制併合に対してどう思うか.

当時としての特殊な歴史的背景があった. 日本が韓国を 100年前 合併したが 1945年ポツダム宣言以後日本は敗れて大韓民国が建国された. 総理として 1995年 8月 15日談話を通じて植民地支配と侵略でアジア各国の国民に大きい被害と苦痛を抱かれたということを率直に認めてお詫びを表明してこれからはこのような過ちを繰返しなくて平和とデモクラシーを守って行くという指針を出した. 過去の歴史を現実で認めて植民地支配は悪かった, 侵略戦争は過ちだったということを表明したのだ. そういう歴史的な評価を下したと思う.

_村山談話の政治・外交的な意味は.

談話の出た日は戦争が終わって必ず 50年目になる年だった. 当時には歴史認識に対してもいわゆる一致した (日本の)国論がなかった. ¥"その戦争は植民地解放戦争だ. 戦争を通じてすべての植民地が解放されなかったか. ヨーロッパがアジアを攻め寄せて植民地化することを阻んでアジアを守るための戦争だった¥"と戦争を高く評価する歴史学者もあった. しかし談話は ¥"植民地支配と戦争は過ちだった. アジアの人々に大きい被害と苦痛を抱かれた. こんな事をまたしてはいけない¥"は歴史観を内閣の意見で決めて政府の方針で出したのだ. 初めて日本国内の歴史観を統一したと言うのに非常に大きい意味がある.

_談話発表当時抵抗はなかったか.

心の中では反対した人もいたと思う. 今も反対意見を表示する人がいる. しかし満場一致で閣議が決めたということは彼ほどの国民の支持があったからだと思う. 国民の大多数が納得したと思う. ただ日本は思想, 言論の自由があるから今もそんな方針に反対だと思う人がいることは仕方ないのだ.

_村山談話は日本政府アジア外交の基本に席を取った.

談話がアジア外交の基本になったことは当然だと思う. 今民主党政権を含んで談話発表以後のすべての政権がこの方針を受け継いでいる. 小泉前総理などが靖国に参拜してあらゆる話をしないか, 歴史教科書 問題などもないとしかしそれでもやっぱり (植民地支配と侵略戦争は)過ちだったと内閣は言っているし歴史教科書も基準を決めて修正している. (植民地支配や戦争を合理化する)そんな意見がまだあるが国を動かすに値する大きい力ではない. 大多数は談話を信頼していると思う.

_韓日関係がよくなっているが相変らず解決されない問題を抱いている. 独島領有権はどんなに近づいて行くと良いか.

領土問題は難しい問題だ. 竹島(竹島・独島の日本人)は権利を争って争うより日本と韓国がどのようにすればお互いに協力することができるかと思う視覚で一緒に誠意を持って話をして行けばどんな形態でも合意が出ることができないか思う. 例えば竹島という島をどんなふうに活用することができるのか, 漁業権問題があるもののこれを韓国にも利益になって日本にも利益になる方向に誠意を持って論議して行けば合意点を作り上げることができないかと思うのだ. そんな努力をしてくれるように願う.

_右翼歴史教科書問題も時さえなれば両国関係を悪化させる障害物だ.

歴史教科書問題は検定の段階で過ちを修正して行くことができることが一つの解決方法でまたそんな (右翼)教科書が出てきても各地方自治体でそれを採択しないことも必要だ. 今は採択率が低い. そんな姿を見ればまだ市民たちの常識というのがある. 市民の力が重要だ.

_鳩山政府は靖国神社問題解決のために新しい追悼施設設立検討を明らかにしたが.

靖国 ジェントルマンは宗教法人で存在しなければならないが戦争を高く評価して戦意を高揚するために靖国が貢献したという歴史的な問題を抱いている. そんな歴史的な問題を無くすために新しい形態に違令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 党派と宗派を越えて世界のすべての人の参拜するようにする施設を作るのが必要だと思う. 前から 検討して来たことだが実現が易しくなかった. 簡単に成事になることは難しいがそんな方向で検討して行くことは重要だと思う.

_韓日両国の文化, 青少年交流がますます拡がっている.

キム・デジュン大統領が日本を訪問して小淵当時総理と共同宣言に合議した. 政治としては過去を問わずに未来を志向すると, 一緒に協力して行こうという意味の宣言を言った. 文化開放, 交流も改善した. その後で映画, 音楽など多くの文化分野の交流が活発になった. そんなことを通じて両国が理解の幅を広げて来た. そんな交流が日韓関係に非常に大きい役目をして来たと思う. 歴史的な傷を治癒するには相当な時間がかかるでしょう. それほど傷が深いからだ. 時間がかかっても行き直す努力をして行く必要がある.

_両国関係を強化するために何が重要なのか.

経済は (外交問題と特別に)かかわらず交流が持続するでしょう. そして青少年たちが交流して相互友情を積んで理解するのが重要だ. 若い世代たちが未来を背負って行くでしょうからだ. 何より重要なことは平和の問題だ. (両国が)間がよくなってお互いに大事な関係になってこれからどんな問題が起こっても対話を通じて解決し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 それで韓国に利益なら日本にも利益で, 日本に利益なら韓国にも利益であるそんな関係を作って行くのが重要だ. 単純に日韓の問題ではなく 中国が, アジア全体を含んでそんな方向に進まなければならない.

_最近にはどんな活動をしているか.

これからは政治家ではないから政党活動を正式にしない. しかし過去の戦争を繰り返さないためにどんなことがあっても日本平和憲法だけは, 特に憲法 9条は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活動をしている. 憲法改訂は結局国民投票で決めることだから国民がこの問題を自覚して憲法を守って行くことができるようにすることを最後の南は事だと思っている. 多くの団体があってそこに協力している.

_韓日強制併合 100周年を迎え日本前総理として韓国民に言いたいことは.

100年が経つ間良くない時期もあったし韓国人の意志を無視して植民地支配をした時期もあった. しかしそんな時代を清算して行きながら, 単純にイッオがはのではなく心と心で清算をして手を取り合って行くことが重要ではないか思う. 去る 100年の経験を返り見ながら, それを基盤で傷を治癒して行こうとする努力を心よりし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 そうしようと思う日本人の努力を正当に評価してくれてお互いに力を合して新しい時代を開いて行けば良いだろう.

85歳という年が信じられなかった. 村山前総理は顔に和色が帯びたし言いぐさはトバックトバックした. 健康の秘訣を聞いた. 笑って彼は貧しく暮すことだと言った. 貧しければ何でも自分が動いてしなければならない. 頭も使わなければならないし, 手足も書かなければならないし, 身を動かなければならない. ぜいたくなことは食べる事ができないから魚や野菜に消息(小食)をするようになる. 徴兵で戦争に参加した最後の総理村山の ¥"平和主義¥"は ¥"貧乏¥"という精神的 価値とも脈が触れていた.

_鳩山(鳩山) 政府が積極的なアジア外交を標榜している.

アジアを無視しては日本が存在しないと思う. 幸いに東アジア共同体構想が出て論議されている段階なのでそんな方向で目を向けてアジア全体の平和と安全と発展のために積極的に協力する姿勢に進むことは非常に良いと思う.

_100年前韓日強制併合に対してどう思うか.

当時としての特殊な歴史的背景があった. 日本が韓国を 100年前 合併したが 1945年ポツダム宣言以後日本は敗れて大韓民国が建国された. 総理として 1995年 8月 15日談話を通じて植民地支配と侵略でアジア各国の国民に大きい被害と苦痛を抱かれたということを率直に認めてお詫びを表明してこれからはこのような過ちを繰返しなくて平和とデモクラシーを守って行くという指針を出した. 過去の歴史を現実で認めて植民地支配は悪かった, 侵略戦争は過ちだったということを表明したのだ. そういう歴史的な評価を下したと思う.

_村山談話の政治・外交的な意味は.

談話の出た日は戦争が終わって必ず 50年目になる年だった. 当時には歴史認識に対してもいわゆる一致した (日本の)国論がなかった. ¥"その戦争は植民地解放戦争だ. 戦争を通じてすべての植民地が解放されなかったか. ヨーロッパがアジアを攻め寄せて植民地化することを阻んでアジアを守るための戦争だった¥"と戦争を高く評価する歴史学者もあった. しかし談話は ¥"植民地支配と戦争は過ちだった. アジアの人々に大きい被害と苦痛を抱かれた. こんな事をまたしてはいけない¥"は歴史観を内閣の意見で決めて政府の方針で出したのだ. 初めて日本国内の歴史観を統一したと言うのに非常に大きい意味がある.

_談話発表当時抵抗はなかったか.

心の中では反対した人もいたと思う. 今も反対意見を表示する人がいる. しかし満場一致で閣議が決めたということは彼ほどの国民の支持があったからだと思う. 国民の大多数が納得したと思う. ただ日本は思想, 言論の自由があるから今もそんな方針に反対だと思う人がいることは仕方ないのだ.

_村山談話は日本政府アジア外交の基本に席を取った.

談話がアジア外交の基本になったことは当然だと思う. 今民主党政権を含んで談話発表以後のすべての政権がこの方針を受け継いでいる. 小泉前総理などが靖国に参拜してあらゆる話をしないか, 歴史教科書 問題などもないとしかしそれでもやっぱり (植民地支配と侵略戦争は)過ちだったと内閣は言っているし歴史教科書も基準を決めて修正している. (植民地支配や戦争を合理化する)そんな意見がまだあるが国を動かすに値する大きい力ではない. 大多数は談話を信頼していると思う.

_韓日関係がよくなっているが相変らず解決されない問題を抱いている. 独島領有権はどんなに近づいて行くと良いか.

領土問題は難しい問題だ. 竹島(竹島・独島の日本人)は権利を争って争うより日本と韓国がどのようにすればお互いに協力することができるかと思う視覚で一緒に誠意を持って話をして行けばどんな形態でも合意が出ることができないか思う. 例えば竹島という島をどんなふうに活用することができるのか, 漁業権問題があるもののこれを韓国にも利益になって日本にも利益になる方向に誠意を持って論議して行けば合意点を作り上げることができないかと思うのだ. そんな努力をしてくれるように願う.

_右翼歴史教科書問題も時さえなれば両国関係を悪化させる障害物だ.

歴史教科書問題は検定の段階で過ちを修正して行くことができることが一つの解決方法でまたそんな (右翼)教科書が出てきても各地方自治体でそれを採択しないことも必要だ. 今は採択率が低い. そんな姿を見ればまだ市民たちの常識というのがある. 市民の力が重要だ.

_鳩山政府は靖国神社問題解決のために新しい追悼施設設立検討を明らかにしたが.

靖国 ジェントルマンは宗教法人で存在しなければならないが戦争を高く評価して戦意を高揚するために靖国が貢献したという歴史的な問題を抱いている. そんな歴史的な問題を無くすために新しい形態に違令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 党派と宗派を越えて世界のすべての人の参拜するようにする施設を作るのが必要だと思う. 前から 検討して来たことだが実現が易しくなかった. 簡単に成事になることは難しいがそんな方向で検討して行くことは重要だと思う.

_韓日両国の文化, 青少年交流がますます拡がっている.

キム・デジュン大統領が日本を訪問して小淵当時総理と共同宣言に合議した. 政治としては過去を問わずに未来を志向すると, 一緒に協力して行こうという意味の宣言を言った. 文化開放, 交流も改善した. その後で映画, 音楽など多くの文化分野の交流が活発になった. そんなことを通じて両国が理解の幅を広げて来た. そんな交流が日韓関係に非常に大きい役目をして来たと思う. 歴史的な傷を治癒するには相当な時間がかかるでしょう. それほど傷が深いからだ. 時間がかかっても行き直す努力をして行く必要がある.

_両国関係を強化するために何が重要なのか.

経済は (外交問題と特別に)かかわらず交流が持続するでしょう. そして青少年たちが交流して相互友情を積んで理解するのが重要だ. 若い世代たちが未来を背負って行くでしょうからだ. 何より重要なことは平和の問題だ. (両国が)間がよくなってお互いに大事な関係になってこれからどんな問題が起こっても対話を通じて解決し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 それで韓国に利益なら日本にも利益で, 日本に利益なら韓国にも利益であるそんな関係を作って行くのが重要だ. 単純に日韓の問題ではなく 中国が, アジア全体を含んでそんな方向に進まなければならない.

_最近にはどんな活動をしているか.

これからは政治家ではないから政党活動を正式にしない. しかし過去の戦争を繰り返さないためにどんなことがあっても日本平和憲法だけは, 特に憲法 9条は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活動をしている. 憲法改訂は結局国民投票で決めることだから国民がこの問題を自覚して憲法を守って行くことができるようにすることを最後の南は事だと思っている. 多くの団体があってそこに協力している.

_韓日強制併合 100周年を迎え日本前総理として韓国民に言いたいことは.

100年が経つ間良くない時期もあったし韓国人の意志を無視して植民地支配をした時期もあった. しかしそんな時代を清算して行きながら, 単純にイッオがはのではなく心と心で清算をして手を取り合って行くことが重要ではないか思う. 去る 100年の経験を返り見ながら, それを基盤で傷を治癒して行こうとする努力を心よりし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 そうしようと思う日本人の努力を正当に評価してくれてお互いに力を合して新しい時代を開いて行けば良いだろう.

85歳という年が信じられなかった. 村山前総理は顔に和色が帯びたし言いぐさはトバックトバックした. 健康の秘訣を聞いた. 笑って彼は貧しく暮すことだと言った. 貧しければ何でも自分が動いてしなければならない. 頭も使わなければならないし, 手足も書かなければならないし, 身を動かなければならない. ぜいたくなことは食べる事ができないから魚や野菜に消息(小食)をするようになる. 徴兵で戦争に参加した最後の総理村山の ¥"平和主義¥"は ¥"貧乏¥"という精神的 価値とも脈が触れていた.

 

_鳩山(鳩山) 政府が積極的なアジア外交を標榜している.

アジアを無視しては日本が存在しないと思う. 幸いに東アジア共同体構想が出て論議されている段階なのでそんな方向で目を向けてアジア全体の平和と安全と発展のために積極的に協力する姿勢に進むことは非常に良いと思う.

_100年前韓日強制併合に対してどう思うか.

当時としての特殊な歴史的背景があった. 日本が韓国を 100年前 合併したが 1945年ポツダム宣言以後日本は敗れて大韓民国が建国された. 総理として 1995年 8月 15日談話を通じて植民地支配と侵略でアジア各国の国民に大きい被害と苦痛を抱かれたということを率直に認めてお詫びを表明してこれからはこのような過ちを繰返しなくて平和とデモクラシーを守って行くという指針を出した. 過去の歴史を現実で認めて植民地支配は悪かった, 侵略戦争は過ちだったということを表明したのだ. そういう歴史的な評価を下したと思う.

_村山談話の政治・外交的な意味は.

談話の出た日は戦争が終わって必ず 50年目になる年だった. 当時には歴史認識に対してもいわゆる一致した (日本の)国論がなかった. ¥"その戦争は植民地解放戦争だ. 戦争を通じてすべての植民地が解放されなかったか. ヨーロッパがアジアを攻め寄せて植民地化することを阻んでアジアを守るための戦争だった¥"と戦争を高く評価する歴史学者もあった. しかし談話は ¥"植民地支配と戦争は過ちだった. アジアの人々に大きい被害と苦痛を抱かれた. こんな事をまたしてはいけない¥"は歴史観を内閣の意見で決めて政府の方針で出したのだ. 初めて日本国内の歴史観を統一したと言うのに非常に大きい意味がある.

_談話発表当時抵抗はなかったか.

心の中では反対した人もいたと思う. 今も反対意見を表示する人がいる. しかし満場一致で閣議が決めたということは彼ほどの国民の支持があったからだと思う. 国民の大多数が納得したと思う. ただ日本は思想, 言論の自由があるから今もそんな方針に反対だと思う人がいることは仕方ないのだ.

_村山談話は日本政府アジア外交の基本に席を取った.

談話がアジア外交の基本になったことは当然だと思う. 今民主党政権を含んで談話発表以後のすべての政権がこの方針を受け継いでいる. 小泉前総理などが靖国に参拜してあらゆる話をしないか, 歴史教科書 問題などもないとしかしそれでもやっぱり (植民地支配と侵略戦争は)過ちだったと内閣は言っているし歴史教科書も基準を決めて修正している. (植民地支配や戦争を合理化する)そんな意見がまだあるが国を動かすに値する大きい力ではない. 大多数は談話を信頼していると思う.

_韓日関係がよくなっているが相変らず解決されない問題を抱いている. 独島領有権はどんなに近づいて行くと良いか.

領土問題は難しい問題だ. 竹島(竹島・独島の日本人)は権利を争って争うより日本と韓国がどのようにすればお互いに協力することができるかと思う視覚で一緒に誠意を持って話をして行けばどんな形態でも合意が出ることができないか思う. 例えば竹島という島をどんなふうに活用することができるのか, 漁業権問題があるもののこれを韓国にも利益になって日本にも利益になる方向に誠意を持って論議して行けば合意点を作り上げることができないかと思うのだ. そんな努力をしてくれるように願う.

_右翼歴史教科書問題も時さえなれば両国関係を悪化させる障害物だ.

歴史教科書問題は検定の段階で過ちを修正して行くことができることが一つの解決方法でまたそんな (右翼)教科書が出てきても各地方自治体でそれを採択しないことも必要だ. 今は採択率が低い. そんな姿を見ればまだ市民たちの常識というのがある. 市民の力が重要だ.

_鳩山政府は靖国神社問題解決のために新しい追悼施設設立検討を明らかにしたが.

靖国 ジェントルマンは宗教法人で存在しなければならないが戦争を高く評価して戦意を高揚するために靖国が貢献したという歴史的な問題を抱いている. そんな歴史的な問題を無くすために新しい形態に違令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 党派と宗派を越えて世界のすべての人の参拜するようにする施設を作るのが必要だと思う. 前から 検討して来たことだが実現が易しくなかった. 簡単に成事になることは難しいがそんな方向で検討して行くことは重要だと思う.

_韓日両国の文化, 青少年交流がますます拡がっている.

キム・デジュン大統領が日本を訪問して小淵当時総理と共同宣言に合議した. 政治としては過去を問わずに未来を志向すると, 一緒に協力して行こうという意味の宣言を言った. 文化開放, 交流も改善した. その後で映画, 音楽など多くの文化分野の交流が活発になった. そんなことを通じて両国が理解の幅を広げて来た. そんな交流が日韓関係に非常に大きい役目をして来たと思う. 歴史的な傷を治癒するには相当な時間がかかるでしょう. それほど傷が深いからだ. 時間がかかっても行き直す努力をして行く必要がある.

_両国関係を強化するために何が重要なのか.

経済は (外交問題と特別に)かかわらず交流が持続するでしょう. そして青少年たちが交流して相互友情を積んで理解するのが重要だ. 若い世代たちが未来を背負って行くでしょうからだ. 何より重要なことは平和の問題だ. (両国が)間がよくなってお互いに大事な関係になってこれからどんな問題が起こっても対話を通じて解決し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 それで韓国に利益なら日本にも利益で, 日本に利益なら韓国にも利益であるそんな関係を作って行くのが重要だ. 単純に日韓の問題ではなく 中国が, アジア全体を含んでそんな方向に進まなければならない.

_最近にはどんな活動をしているか.

これからは政治家ではないから政党活動を正式にしない. しかし過去の戦争を繰り返さないためにどんなことがあっても日本平和憲法だけは, 特に憲法 9条は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活動をしている. 憲法改訂は結局国民投票で決めることだから国民がこの問題を自覚して憲法を守って行くことができるようにすることを最後の南は事だと思っている. 多くの団体があってそこに協力している.

_韓日強制併合 100周年を迎え日本前総理として韓国民に言いたいことは.

100年が経つ間良くない時期もあったし韓国人の意志を無視して植民地支配をした時期もあった. しかしそんな時代を清算して行きながら, 単純にイッオがはのではなく心と心で清算をして手を取り合って行くことが重要ではないか思う. 去る 100年の経験を返り見ながら, それを基盤で傷を治癒して行こうとする努力を心よりし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 そうしようと思う日本人の努力を正当に評価してくれてお互いに力を合して新しい時代を開いて行けば良いだろう.

85歳という年が信じられなかった. 村山前総理は顔に和色が帯びたし言いぐさはトバックトバックした. 健康の秘訣を聞いた. 笑って彼は貧しく暮すことだと言った. 貧しければ何でも自分が動いてしなければならない. 頭も使わなければならないし, 手足も書かなければならないし, 身を動かなければならない. ぜいたくなことは食べる事ができないから魚や野菜に消息(小食)をするようになる. 徴兵で戦争に参加した最後の総理村山の ¥"平和主義¥"は ¥"貧乏¥"という精神的 価値とも脈が触れていた.

また “韓国人たちが日本の真正性を疑う自体を否定することはできない.”と談話以後日本側で見せてくれた妄発や妄言に対しても認めた.

村山前総理は特に “韓日併呑条約は歴史的背景で延ばして ‘不当な条約’”と言い切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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