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를 아는 자는 강하다?
다치바나나 마토바의 경우는 유서나 최후진술이 없어서 그들의 심경을 헤아릴 수 없다. 특히 두 사람은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약 1년 동안 매일 미군 병사들의 학대로 거의 초주검이 되어 사형대에 올랐다고 한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 포로를 잔인하게 학대한 미군은 거의 없었지만 이때만은 예외였던 것 같다.
그러면 왜 일본군은 포로를 그렇게 학대하고 살육했을까. 그들이 보여준 야만과 수성(獸性) 본질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포로가 되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카지마의 말대로, 일본 군부는 병사들에게 포로가 되는 것을 수치라고 가르쳐왔다. 1941년 1월8일 일본군이 전장에서 준수해야 할 전투규범 및 행동규범으로 공포된 전진훈(戰陣訓)에는 그러한 왜곡된 가치관이 나타나 있다. 특히 제2장 8조의 ‘살아서 포로의 치욕을 당하지 말고 죽어서 죄화(罪禍)의 오명을 남기지 말라’는 부분 때문에 많은 병사가 헛되이 죽어갔다.
일본 군부가 포로는 치욕이라는 가치관을 강조한 것은 강병을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무모한 대미(對美) 개전을 감행한 일본으로서는 국력의 현저한 차이를 정신력으로 메울 수밖에 없었다. 군인의 의무를 다한 패배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당연히 포로로 인정됐다. 그러나 일본은 인도주의적 가치관을 부정했다. 대신 죽을 때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는 임무완수의 가치관을, 포로의 수치라는 전진훈의 가르침으로 전환해 강조했다. 따라서 포로의 치욕은 무사도의 수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전진훈의 가르침은 무사도의 수치를 병사 자신뿐 아니라 가족이나 고향까지 포함해 최대한의 수치로 확대 해석한다. ‘수치를 아는 자는 강하다. 항상 향당(鄕黨) 가문의 면목을 생각하고,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고 함으로써, 개인의 수치를 소속단체의 수치로 확대해 연대적 제재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제재는 일본문화의 부정적 특징이라 할 따돌림(村八分)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국가에 의해 조작되고 강조된 도착적 가치관으로 인권과 개인의 가치관이 중시되는 서양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조작되고 강요된 군사문화는 자연히 미군 포로에 대한 학대와 살육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