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朝流열풍



행차 일행 400 ~ 500명
조선통신사의 식성, 술 취향까지 파악
최고위 직책에게 최고급 품질 도미(Sea bream fish) 대접
30년에 1회 행차.
일행은 사신을 비롯해서, 시인, 화가, 서예가, 의원등 다양하게 망라.
Shimamura Geigiro(75세) 일본 란토 문화재단 부이사장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
"접대의 일이 보통의 일이 아니었다.
접대원 700~800명, 타지역에서 파견된 인원을 더하면 2000명 이상.
三不 원칙이 있었는데,
一 : 접대에 실패하지 말것.
二 : 실례하지 말것.
三 : 사고가 있으면 안된다.
三不 원칙이 최근에 발견되어 해석된 비문에 의하면,
바다에 보이는 집들은 깨끗히 하라.
흉한 부분은 가려라.
조선통신사를 구경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기웃거리지 말아라.
조선통신사 대접 준비를 하다가 주민 60명 정도가 익사 사고도 있었다."
조선통신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때는,
한글을 제작한 세종왕(1429년) 부터 ~ 1811년까지 총 12회.
초기에는 불법 해역 침범 금지 요청.
후기에는 문화 전달 및 교류.


朝流열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