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권지삼(卷之三) 9(九)-17(十七)
본국검은 무예도보통지 3권에 제독검 다음인 2번째로 실려 있다.
무예도보통지 세번째 책에는 제독검, 본국검, 쌍검, 마상쌍검, 월도, 마상월도, 협도, 등폐의
순서를 실려져 있으며, 본국검은 9(九)-17(十七)장에 걸쳐져 목록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존재한다.
무예도보통지 권지삼 목록은 [본국검(本國劍)- 설2(說二) 보(譜) 도24(圖二十四) 총보(總譜) 총도(總圖)] 로 실려 있다
본국검총도(本國劍總圖)
- 무예도보통지 권3 16장 뒷장과 17장 시작 장에 나누어 실려 있다

본국검의 역사
신라는 귀족 무사 집단인 화랑을 제도적으로 적극 육성하여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기반을 닦았다.
화랑의 무예와 그 수련에서 풍류는 최치원(崔致遠)이 전하는 현묘지도(玄妙之道),
즉 신라에 고유한 선도(仙道)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한국에도 고유한 무도가 있었음을 밝히는 최초의 증언이다.
신라의 화랑도와 고구려의 초의선사. 백제의 무사도를 계승한 고려
고려때 무예도감 [ 武藝都監 ] 1384년 무예도본을 기초한
조선시대 훈련도감(1594년) 무예제보(1598년)무예신보(1759년)
무예도보통지 (1790년)등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전하는 본국검(本國劍)은 신라검(新羅劍) 또는 신검(新劍)이라고도 하는데 신라에서 성립된 우리 고유의 검술이다.
본국검은 신라 화랑들이 무술연마와 아울러 실전에서도 사용한 검술이며, 이것이 고려·조선시대에는 보졸(步卒)이 환도(環刀)를 사용하여 행하는 검술이 되었다
무예도보통지 (武藝圖譜通志)는 규장각 검서관인 이덕무, 박제가와 장용영 장교인 백동수 등이 정조의 명으로 1790년(정조 14년)에 편찬한 훈련용 병서이다
고종 때인 1896년 경무청에서 치안의 필요성에 의해 경찰 교육의 한 과목으로
격검(擊劍=검술)이 채택되었고,
1904년 육군연성학교에서도 교과목에 격검을 포함시켰다.
1908년에는 한국과 일본 간 최초로 경찰관 격검대회가 열렸다.
한일 간에 검술이 교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계승
구한말의 무관이었던 오공(晤空) 윤명덕(尹明德) 의 사제 해범 선생이 있다
해범 선생의 문하에는 현재 150여명의 대학교수와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두고
500여명의 무예인이 활동하고 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검법보(劍法譜)인 `본국검법(本國劍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