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과거로 가는 일본
[세계일보] 2011년 08월 02일(화) 오후 10:56 결코 잊어선 안될 8월 패전의 교훈독도 문제로 제 발목 잡아서야
[세계일보]8월은 일본에는 패전, 우리에게는 광복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2010년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이해 간 나오토 총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강제성을 인정함으로써 한·일 관계의 변화를 시도한 바 있다. 그러던 것이 올해는 8월 첫날부터 일본 자민당 의원들의 입국농성으로 얼룩졌다. 지난달 11일 일본 외무성이 대한항공의 독도 시험비행을 빌미로 직원들에게 한 달 동안 이용금지 훈령을 내린 데 이어, 다시 독도 문제를 들먹이면서 시비를 걸어온 것이다. 더구나 2011년 방위백서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규정함으로써 양국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이제 독도 문제는 한·일 양국 간 관계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시도 때도 없이 툭 하면 일본이 건드는 ‘단골메뉴’가 돼가는 느낌마저 든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일본학이번 사태는 한·일 관계에 유감스럽고 불미스런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1차 책임은 못된 자민당 의원들에게 있다. 동일본대지진 수습에 실패한 민주당 정권을 흔들기 위한 재료로 독도 영유권을 들먹인 것은 한심스런 작태이다. 재일교포 지방참정권 반대, 조선왕실의궤 반환 반대, 역사왜곡과 독도영유권 시비걸기 등으로 한국민들을 화나게 해놓고 정권을 잡는다한들 어떻게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논할 것인가. 정치적인 인기 상승을 노리고자 당내 방침을 거스르면서 입국을 강행했다면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이다.걱정스러운 점은 영토갈등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과 장기불황, 동일본대지진의 피해와 충격, 중국에 밀린 2등 국가라는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해 정신적·물질적 여유가 사라지고 있다. 내셔널리즘을 고취할 수 있는 영토 문제나 납치대책 등 감정적인 이슈가 냉정해야 할 일본외교를 흔들고 있다. 지난달 22일 열린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 일본 마쓰모토 다케아키 외상은 회의가 끝나갈 무렵 재발언 기회를 요청해 납치 문제를 들고 나섰다. 한반도 비핵화가 주제인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을 눈앞에 두고, 일본인 납치부터 쟁점화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기 어렵다.
일본 외교가 이 정도 수준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는 한·일 간 갈등보다는 협력을, 영토분쟁을 떠나서 보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외교협력을 기대하고 있다. 우선 당장은 6자회담 재개와 양국 간 협력이다. 최근 들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남북한 외교장관이 3년 만에 접촉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북대화의 물꼬를 터놓았다. 지난 4월부터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북한방문, 중국과 한국의 6자회담 재개 접촉, 러시아 외무차관의 중국·북한 방문 등으로 6자회담 논의는 본격화됐다. 미국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북한 김계관 외무성 차관의 뉴욕회담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말하자면 6자회담 과정에서 북한, 중국, 미국이 주도하고 한·일 양국이 소외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양국 간 협조가 불가피한 시점에 와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한·일 관계는 사상 최고로 우호적이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양국 외교에서 큰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류 붐과 민간교류, 금융위기시 경제협력 등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것이 없다. 적어도 임기 후반기인 올해 이명박 대통령의 방일과 함께 새로운 미래 100년을 제시해야 할 때이다. 동일본대지진에 지친 일본인들에게 보여준 한국민들의 관심과 정성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선 양국 관계를 공고히 할 계기가 필요하다. 일본정부는 독도와 납치 문제에서 자신을 발목잡는 외교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표류하고 있는 일본 정치와 외교가 하루빨리 안정돼 한·미·일 3국 간 연계와 새로운 한일 100년의 지표가 제시될 수 있도록 일본 외교의 대국적인 방향 전환을 촉구한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일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