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를 세운 사람은 누루하치. 엄격히 말하면 後금은 청나라의 前身이다.
그런데 그의 姓氏는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이 신기한 조합의 한자를 분석해보기로 하자.
애신각라(愛新覺羅)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고국)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청나라를 세운 만주인들의 근원을 살펴 보면 신라와 관련된 姓이라는 해석은 상당히 신빙성을 가진다.(뒤에 서술)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지료"인데, "아이신"은 "(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뜻한다. "(신라 왕실의 姓) 金氏의 겨레" 혹은 "今, 밝음을 숭상하는 겨레"라는 말이다.
청나라라면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는 오랑캐의 나라로 불리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나라이다.
그런데 왜 청나라 왕조의 姓에 신라와, 신라 왕족의 姓 "(金)"이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청나라는 우리나라를 어버이의 나라로 섬겼습니다.
예를 들어 임진倭亂 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의 왕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편지를 썼었지요.
또 유명한 "삼전도 항복" 때는 親明排金을 외치는 조선에 와서 "원래 우리는 고려인의 후손으로 그대들과 같은 나라였다며 "그대는 왜 동족을 따르지 않고 명나라를 돕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청나라는 조선에 번번이 형제의 도리를 강조했습니다.
조선은 명분론에 매여 끝까지 청나라 형제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요."
역사 연구 단체 한배달의 오정윤 연구원은 먼저 청나라가 조선을 부모의 나라로 섬긴 예를 들었다.
그는 누르하치가 백두산 지역에서 태어난 것을 지적하며, 당시 백두산 지역에는 만주계 조선인이 많았고 그들 중 상당수가 고려 때부터 조선 시대까지 고려인 또는 조선인으로 귀화했다고 설명했다. 한 때, 누르하치 또한 평안도 지방 관현에 벼슬을 몇차례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나서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왜 청나라가 끝까지 조선에 호의적이었을까요?
바로
청나라가 금나라로부터 나왔고 金나라는 신라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역사학자 이덕일 씨도 오정윤 연구원과 의견을 같이 했다.
"중원을 복속하고 한족을 지배했던 곳이 청나라입니다.
反政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 때 조선은 몹시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청나라는 충분히 조선을 복속하고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자신들의 조상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