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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씨 오스트레일리아에 도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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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호주 한국인의 독도사랑

7월 중순에 2주간 정도 오스트레일리아에 갔다. 호주 시드니에 있는 「조국애, 독일

시마 아이, 호주 연합회」의 초대로 시드니, 캔버라, 멜버른등에서 독도 강연

(을)를 하기 위한(해)였다. 대상은 호주에 사는 한국인이다. 「호주 연합회」를 인솔하는 코·드

시크 회장은 08년, 독도(드크트, 일본명·타케시마) 문제와 관련해, 호주의 일본대

사관앞에서 항의 집회를 주도한 인물이다. 코 회장은 시드니에서의 피아노 사업으로 성공

한 기업가이기도 하다. 코 회장은 항의 집회를 끝낸 후, 현지 한국인에 대한 독일

섬교육의 필요성을 느껴 한국의 전문가등을 몇 번이나 시드니에 초대하고 있다.

그림자에 나는 금년까지 3년 연속으로 호주에 가고 있다. 그 때문일까, 시드니의 한국

국민 사회에서 나는 꽤 잘 알려져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강연을 들으러 왔다

사람의 수를 봐도 느낄 수 있었다. 시드니 한국인 사회의 미디어도 나에게 관

기사를 호의적으로 써 주었다. 무엇보다도 독도에 관심을 가져 준다는 것이

기뻤다.

시드니에서 강연을 끝내고 캔버라에 갔다. 캔버라는 호주의 수도이다

유익인가, 행정 기관의 건물이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거기서 호주 대사를 시작해 한국 공관의 사람들을 만났다. 좋은 만남이었다.

하고 자료를 모으기 위해 캔버라 국립 도서관에 갔지만, 그곳의 한국실에 근무

2명의 한국인 여성을 만났던 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2명은 우리의 요청을 문

있어 귀중한 자료를 찾아내, 우리를 서고에 안내해, 여러가지 한국 서적을 보여

(이)라고 주었다. 우리는 많은 한국 서적이 호주 국립 도서관의 서고에 있는 것을 지

,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의 책도 서고에 있었다. 캔버라 국립 도서관의 한국

실은 한국에 관한 지식의 보고였다. 그 날밤에 열린 독도 강연회에는,

캔버라의 행정 기관에 근무하는 한국인이 다수 출석해, 기대 이상의 효과가

.

시드니로부터 캔버라로 이동할 때는 자동차를 이용했기 때문에, 왕래하는 길

그리고 호주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우, 양, 말의 무리가 한가롭게 풀을 음식

풍경은 그림같았다. 일단 시드니로 돌아온 나는 다음날, 코·돈시크

회장 부부와 함께 멜버른행의 비행기를 탔다. 나는 캔버라와 메르보

룬은 처음이었다. 특히 멜버른은 아름답고, 예술적인 감각이 산 도시다

. 강연이 끝난 후, 멜버른을 돌았지만, 개척기에 학살된 호주원

주민의 영혼을 위로하는 조각이 줄선 산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영국인의 조각

집이 학살된 원주민과 백인의 평화를 위해서 제작했다고 하지만, 이 수많은

조각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시켰다.

호주의 한국인은 의외롭게도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심이 많아, 항상 고국에 관심의

안테나를 향하여 있었다. 길게 호주에 살아도 한국인이라고 하는 아이덴티티는

오히려 깊어져 가는 것 같았다. 강연의 전후에 몇 번이나 간담회를 열어, 향후의 과

제목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호주는 지금 겨울이지만, 내가 체재하는 동안은 하늘이 고

구 가을과 같은 날씨가 계속 되었다. 나는 호주의 한국인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언제라도

또 온다고 하는 생각으로 호주를 떠났다.

호사카 유우지 세종(세종) 대교수·일본학

http://japanese.joins.com/article/730/142730.html?servcode=100&sectcode=120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몰라요가

한국도 존재하기 어렵게 되어 이주하고 싶어서는


원문보기

保坂氏オーストラリアに逃亡か?

 

【コラム】豪州韓国人の独島愛

7月中旬に2週間ほどオーストラリアへ行った。 豪シドニーにある「祖国愛、独

島愛、豪州連合会」の招待でシドニー、キャンベラ、メルボルンなどで独島講演

をするためだった。 対象は豪州に住む韓国人だ。 「豪州連合会」を率いるコ・ド

ンシク会長は08年、独島(ドクト、日本名・竹島)問題と関連し、豪州の日本大

使館前で抗議集会を主導した人物だ。 コ会長はシドニーでのピアノ事業で成功

した企業家でもある。 コ会長は抗議集会を終えた後、現地韓国人に対する独

島教育の必要性を感じ、韓国の専門家らを何度かシドニーに招待している。 お

かげで私は今年まで3年連続で豪州に行っている。 そのためか、シドニーの韓

国人社会で私はかなりよく知られているようだった。 それは講演を聞きに来た

人の数を見ても感じることができた。 シドニー韓国人社会のメディアも私に関す

る記事を好意的に書いてくれた。 何よりも独島に関心を持ってくれるというのが

うれしかった。

シドニーで講演を終えてキャンベラに行った。 キャンベラは豪州の首都である

ためか、行政機関の建物が都市の多くを占めているという印象を受けた。 私は

そこで豪州大使をはじめ、韓国公館の人たちに会った。 良い出会いだった。 そ

して資料を集めるためキャンベラ国立図書館に行ったが、そこの韓国室に勤め

る2人の韓国人女性に会ったのが最も印象深かった。 2人は私たちの要請を聞

いて貴重な資料を探し出し、私たちを書庫に案内し、いろんな韓国書籍を見せ

てくれた。 私たちは多くの韓国書籍が豪州国立図書館の書庫にあることを知

り、深い感銘を受けた。 私の本も書庫にあった。 キャンベラ国立図書館の韓国

室は韓国に関する知識の宝庫だった。 その日夜に開かれた独島講演会には、

キャンベラの行政機関に勤める韓国人が多数出席し、期待以上の効果があっ

た。

シドニーからキャンベラに移動する時は自動車を利用したため、行き来する道

で豪州の自然を満喫できた。 あちこちで牛、羊、馬の群れがのんびりと草を食

べる風景は絵のようだった。 ひとまずシドニーに戻った私は翌日、コ・ドンシク

会長夫妻と一緒にメルボルン行きの飛行機に乗った。 私はキャンベラとメルボ

ルンは初めてだった。 特にメルボルンは美しく、芸術的な感覚が生きた都市だ

った。 講演が終わった後、メルボルンを回ったが、開拓期に虐殺された豪州原

住民の霊魂を慰める彫刻が並んだ山が非常に印象的だった。 英国人の彫刻

家が虐殺された原住民と白人の平和のために制作したというが、この数多くの

彫刻は見る人の胸を熱くさせた。

豪州の韓国人は意外にも韓国で起きた事件に関心が多く、常に故国に関心の

アンテナを向けていた。 長く豪州に住んでも韓国人というアイデンティティーは

むしろ深まっていくようだった。 講演の前後に何度か懇談会を開き、今後の課

題について話し合ったりもした。 豪州はいま冬だが、私が滞在する間は空が高

く秋のような天気が続いた。 私は豪州の韓国人が私を必要とするならいつでも

また来るという思いで豪州を離れた。

保坂祐二世宗(セジョン)大教授・日本学

http://japanese.joins.com/article/730/142730.html?servcode=100&sectcode=120

何が言いたいのかわからんが

韓国も居づらくなって移住したいんで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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