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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합 국제법上 불법 입증 문건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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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합 무효 입증하는 문건 공개

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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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강제병합이 국제법상 무효라는 것을 입증하는 일왕의 조서 원본이 최초로 확인됐다고 서울대 이태진 명예교수가 밝혔습니다.

이태진 교수가 공개한 1910년 8월29일 일왕의 한일병합 공포 조서에는 당시 일본 국새와 일왕의 서명이 들어 있습니다.

반면 대한제국 순종황제가 같은 날 반포한 조서는 국새와 서명이 없으며, 단지 어새만 날인돼 있습니다.

이 교수는 양국의 문서 형식이 다른 것은 한일병합이 순종황제 승인을 거쳐 이뤄졌다는 일본 측 주장을 뒤엎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view.html?cateid=1041&newsid=20100811125119091&p=mbn

"한일병합 무효" 입증 문건 처음으로 확인

연합뉴스 | 입력 2010.08.11 07:02  

서울대 이태진 명예교수, 일본측 `병합조서" 원본 첫 입수

일왕 서명 명시..순종황제 서명 없는 우리측 조서와 대비

"병합조약 직접 체결하지 않았음이 분명해졌다"

 한.일병합이 국제법상 무효임을 입증하는 조약문건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연합뉴스가 10일 서울대 이태진 명예교수로부터 입수한 "일본측 한.일병합 조서" 사진자료에 따르면 1910년 8월29일 일왕(천황)이 한일병합을 공포한 조서에 국새(天皇御璽)를 찍고 "睦仁"이라는 이름을 서명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이 최근 입수해 연합뉴스에 제공한 일본측 한.일병합과 관련된 일본측 공문조서에도 국새 날인과 함께 일왕의 이름인 "睦仁"(일왕 메이지의 본명. 무쓰히토)이 서명돼있다.

반면 대한제국 순종황제가 같은 날 반포한 조서(칙유) 원본에는 국새가 찍히지 않았고 "李拓"이라는 이름도 서명되지 않았다. 그 대신 행정적 결재에만 사용하는 "勅命之寶"라는 어새가 날인돼있다.

양측 조서의 형식요건이 이처럼 상이한 것은 한.일병합이 순종황제의 승인을 거쳐 합법적으로 이뤄졌다는 일본측 주장을 뒤엎는 것으로, 국제법상 무효임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 어학연구원이 소장한 순종황제의 조서(칙유) 원본은 공개된 적이 있으나 이를 비교할 수 있는 일본에서 원본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 서울대 이 교수는 지난달말 일본 도쿄 국립공문서관에 소장된 일본측 조서원본을 발견했으며 이를 이달초 CD 형태로 일본측으로부터 전달받았다.

기존에는

한.일합병 당시 3대 조선통감이자 육군대신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는 1910년 8월22일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전권위임장을 준 뒤 순종 황제로부터 서명과 날인을 받아오도록 했고 당시 순종황제는 두시간 이상 버티다 결국 "大韓國璽"라고 새겨진 국새를 찍고 그 위에 자신의 이름을 직접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조약이 발효되려면 병합의 사실을 알리는 양국 황제의 조서(조칙)가 공포돼야 한다는 점에서 데라우치와 이완용은 양국 황제의 조칙을 언제든지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체결했으며 8월29일에 이르러 각각 조서를 반포했다.

이 교수는 "병합조약 문건이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며 "양국 조서 원본을 비교해볼 때 순종 황제가 병합조약을 직접 체결한 것이 아니란 것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일강제병합의 무효화 주장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한일 양국의 학자들은 앞서 지난 5월 각국의 수도에서 `1910년 체결된 한일병합 조약은 무효"란 내용의 성명을 동시에 발표한 바 있다.

성명은 "한국병합은 대한제국의 황제로부터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격렬한 항의를 군대의 힘으로 짓누르고 실현한 제국주의 행위이며 불의부정(不義不正)한 행위다"라고 선언했으며,

"조약의 전문(前文)도 거짓이고 본문도 거짓이다. 조약 체결의 절차와 형식에도 중대한 결점과 결함이 보이고 있다. 한국병합에 이른 과정이 불의부당하듯이 한일병합조약도 불의부당하다"고 밝혔다.

이와관련, 일본의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는 10일 발표한 담화에서 "정확히 100년 전의 8월, 일한(한일)병합조약이 체결돼 이후 36년에 걸쳐 식민지 지배가 시작됐다"며 "3.1 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군사적 배경 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밝혔다.

한편, 양측의 조서 원본은 오는 20∼30일 국회도서관 로비에서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열리는 "조약으로 보는 근대 한일관계사-한국병합" 불법성의 증거들" 전시회를 통해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view.html?cateid=1068&newsid=20100811070214250&p=yonhap

왜인들은 이제 불법 매수 무력 침략에 대한 증거가 새로 발견되었으니까. ICJ 손해배상 제소를 준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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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카와 전총리 “한일병합은 강제조약”

 

호소카와 모리히로(72) 전 일본 총리가 한일병합에 대해 “일본의 힘을 배경으로 강제된 조약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간 나오토 총리가 지난 10일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 담화에서 누락한 ‘한일 병합의 강제성’을 전임 총리 자격으로 인정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14일 보도된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간 총리의 한일병합 100주년 담화를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하면서도 “좀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땠을까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93년 취임 기자회견에서 “태평양 전쟁은 침략전쟁이었다”는 발언으로 파문을 빚은 것과 관련해 “상식적으로 중국과 한국, 동남아시아에 큰 고통과 희생을 유발한 만큼 가슴에 손을 얹고 보면 침략이 아니었다고 할 수 없다”고 회고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를 봐도 편협한 내셔널리즘이 오히려 국가를 위기에 빠뜨렸다”며 “진정한 내셔널리즘은 상대의 입장에서 사리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독도 문제에 대해선 “역사 해석이 어려운 부분이어서 서로 가능한 한 감정을 억제하는 태도, 어른스러운 대응이 바람직하다”며 “현재로선 이 문제를 유보하는 것 외에 현실적 해결방법은 없어 보인다”고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 부여 문제와 관련해 “피선거권까지 주는 것은 위화감이 있겠지만 납세자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일본에 온 한국인 자손에게는 선거권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1992년 일본 신당을 창당해 1993년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38년 만의 첫 비자민당 출신 총리를 지냈다.

그는 총리 취임 직후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의 방한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식민지배로 한국인이 여러 형태로 괴로움과 슬픔을 당한 데 대해 가해자로서 깊은 사죄를 드린다”고 밝혀,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의 토대를 닦았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435123.html

번역문보기

韓日併合国際法上 不法立証文件公開

韓日併合無效立証する文件公開

MBN


 

//    

韓日強制併合が国際法の上無效というのを立証する 天皇の調書原本が最初に確認されたとソウル大異態陣名誉教授が明らかにしました.

異態陣教授が公開した 1910年 8月29日天皇の 検索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C7%D1%C0%CF%BA%B4%C7%D5&nil_profile=newskwd&nil_id=v20100811125119091 target=new>韓日併合 恐怖調書には当時日本国璽と天皇の署名が入っています.

一方 大韓帝国純宗皇帝が同じ生える頒布した組では国璽と署名がないし, ただ御璽だけ捺印されています.

が教授は 両国の文書形式が他のものは韓日併合が純宗皇帝承認を経って成り立ったという日本側主張を覆すことだと説明しました.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view.html?cateid=1041&newsid=20100811125119091&p=mbn

¥"韓日併合無效¥" 立証文件初めて確認

連合ニュース | 入力 2010.08.11 07:02  

ソウル大異態陣名誉教授, 日本側 `併合組で¥" 原本初入手

天皇署名明示..純宗皇帝署名ない我が方調書と備え

併合条約直接締結しなかったことが明らかになった

 たいてい.イルビョングハブが国際法の上無效なのを立証する条約文件が初めて公開された.

連合ニュースが 10日ソウル大異態陣名誉教授から手に入れた ¥"日本側たいてい.イルビョングハブ調書¥" 写真資料によると 1910年 8月29日天皇(天皇)が韓日併合を公布した調書に国璽(天皇御璽)を取って ¥"睦仁¥"という名前を署名した事実が確認された.


また崔書勉国際韓国研究院長が最近手に入れて連合ニュースに提供した 日本側たいてい.イルビョングハブと係わる日本側公文書調書にも国璽捺印とともに天皇の名前である ¥"睦仁¥"(天皇明治の本名. ムスヒト)が署名されている.

一方大韓帝国純宗皇帝が同じ日頒布した調書(勅諭) 原本には国璽が撮れなかったし ¥"李拓¥"という名前も署名されなかった. その代わり行政的決栽にだけ使う ¥"勅命之宝¥"という御璽が捺印されている.

両側調書の形式要件がこのように相異なっていることはたいてい.イルビョングハブが純宗皇帝の承認を経って合法的に成り立ったという日本側主張を覆すことで, 国際法の上無效なのを裏付ける重要な資料になることに評価される.

現在ソウル大キュジャンカク語学研究員が所蔵した純宗皇帝の調書(勅諭) 原本は公開された事があるがこれを比べることができる 日本で原本が公開されたことは今度が初めてだ.

これと関連, ソウル大この教授は先月末日本東京国立公文書西関に所長された日本側調書原本を見つけたし これを今月初 CD 形態で日本側から伝達受けた.

既存には

韓.日合併当時 3代朝鮮痛感と同時に陸軍代わりであるデラウチマサタケ(寺内正毅)は 1910年 8月22日大韓帝国総理大臣李完用に全権委任状を与えた後純宗皇帝から署名と捺印を受けて来るようにしたし当時純宗皇帝は二時間以上堪えて結局 ¥"大韓国璽¥"と刻まれた国璽を取ってその上に自分の名前を直接署名したことと知られたが, 条約が発效しようとすれば併合の事実を知らせる両国皇帝の調書(詔勅)が公布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点でデラウチと李完用は両国皇帝の詔勅をいつでも発表するように準備するという内容の覚書きを締結したし 8月29日に至ってそれぞれ調書を頒布した.

が教授は 併合条約文件が法的要件を取り揃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ことを見せてくれていると両国調書原本を比べて見る時 純宗皇帝が併合条約を直接締結したのではいやと言うのが明らかになったと言った.

これによって韓日強制併合の無效化主張が拡散するように見える.

韓日両国の学者たちは先立って去る 5月各国の首都で `1910年締結された韓日併合条約は無效¥"と言う(のは)内容の声明(名前)を同時に発表した事がある.

声明(名前)は 韓国併合は大韓帝国の皇帝から民衆に至るまですべての人の激しい抗議を軍隊の力で押さえ付けて実現した帝国主義行為で不意不正(不義不正)一ヘングウィダだと宣言したし,

条約の専門(前文)も偽りで本文も偽りだ. 条約締結の手続きと形式にも重大な欠点と欠陷が見えている. 韓国併合に至った過程が不意部されるように韓日併合条約も不意部されると明らかにした.

これと関連, 日本の菅直人(菅直人) 日本総理は 10日発表した談話で正確に 100年前の 8月, 日韓(韓日)併合条約が締結されて以後 36年にわたって植民地支配が始まったと 3.1 独立運動などの激しい抵抗でも現われたように, 政治.軍事的背景の下に当時韓国人たちはその意味に比べてかなった植民地支配によって国家と文化を奪われて, 民族の自負心に深い傷ついたと明らかにした.

一方, 両側の調書原本は来る 20〜30日国会図書館ロビーで北東アジア歴史財団主催で開かれる ¥"条約で見る近代韓日関係詞-韓国併合¥" 不法性の証拠たち¥" 展示会を通じて一般に公開される予定だ.

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view.html?cateid=1068&newsid=20100811070214250&p=yonhap

倭人たちはもう不法買受無力侵略に対する証拠が新たに発見されたから. ICJ 損害賠償提訴を準備しな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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細川前総理 “韓日併合は強制条約”

 

細川森ヒーロー(72) 私は日本総理が韓日併合に対して “日本の力を背景に強制された条約だった”と言った.

彼の発言は菅直人総理が去る 10日日本の植民地支配に対する ‘お詫び’ 談話で漏れた ‘韓日併合の強制性’を専任総理資格と認めたことなので注目される.


細川の前総理は 14日報道された <朝日新聞> インタビューから, 行った総理の韓日併合 100周年談話を “大きい線を引いた”と評価しながらも “もうちょっとこれから進むのがどうだったろうか思う”とこのように言った.

彼は 1993年就任記者会見で “太平洋戦争は侵略戦争だった”と言う発言で波紋をもたらしたことと係わって “常識的に中国と韓国, 東南アジアに大きい苦痛と犠牲を誘発しただけ胸に手を上げてみれば侵略ではなかったとできない”と回考した.

彼は “2次世界大戦当時を見ても偏狭なナショナリズムがむしろ国家を危機に落とした”と “真正なナショナリズムは相手の立場(入場)で私利を思うこと”と強調した.

彼は独島問題に対しては “歴史解釈が難しい部分なのでお互いにできるだけ感情を抑制する態度, おとなしい対応が望ましい”と “現在としてはこの問題を留保すること以外に現実的解決方法はなさそうだ”と愼重な態度を取った.

在日韓国人の地方参政権付与問題と係わって “被選挙権まで与えることは違和感があるが納税者に選挙権を与えないことは問題がある”と “特に (第2次世界大戦以前に) 日本へ来た韓国人子孫には選挙権を与えなければならない”と強調した.

細川の前総理は 1992年日本新党を創党して 1993年 8月から翌年 4月まで 38年ぶりの初非自民当たり出身総理を勤めた.

彼は総理就任直後キム・ヨンサム当時大統領との訪韓首脳会談で “日本の殖民支配で韓国人が多くの形態でつらさと悲しみにあったのに対して加害者として深いお詫びを申し上げる”と明らかにして, 1995年 ‘村山談話’の土台を磨いた.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435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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