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는 숙연했다. 오직 들리는 건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할머니의 목소리. 희끗한 머리의 미국 여성은 차마 믿을 수 없다는듯 고개를 저었다. 한 중년남성의 눈가엔 이슬이 맺혔다.

13일(미 동부시간) 뉴욕 퀸즈커뮤니티칼리지의 휴먼빌딩 씨어터. 잔학한 나치의 대학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두 분의 미국 할머니와 70년 전 15살의 나이에 끌려가 끔찍한 성노예의 삶을 살아야 했던 두 분의 한국 할머니가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고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가 전했다.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피해 할머니들의 한 서린 수요집회가 통산 1000번째 열린 같은 시간 뉴욕에서는 미국의 유대계 커뮤니티와 한인사회가 사상 처음 위안부 문제에 공동대응하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한인 매체는 물론 미 주류 미디어들도 비상한 관심을 표한 이날 행사는 쿠퍼버그 홀로코스트센터와 2007년 미 의회의 위안부결의안을 끌어낸 미주한인유권자센터가 공동으로 마련한 자리였다. 이용수 이옥선 두분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전날 뉴욕에 도착, 이날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에델 카츠와 한네 리브만 등 두분의 할머니와 상봉했다,
비록 시간과 공간은 달랐지만 똑같은 전쟁의 피해자로서 평생 한많은 삶을 감내한 할머니들은 혈육과 재회한 듯 포옹하며 반가워했다. 이용수 할머니와 이옥선 할머니의 끔찍했던 과거의 증언이 이어지는동안 청중들은 숨죽인 채 일본제국주의의 야만에 분노하고 사과와 배상은 커녕, 강제위안부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뻔뻔함에 치를 떨었다.
2차대전 중 아버지와 두 오빠와 여동생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잃은 에델 카츠 할머니는 "일본의 강제위안부는 인류의 수치다. 일본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시 나치 독일에 할머니와 어머니를 잃고 간신히 탈출해 목숨을 건진 한네 리브만 할머니도 "일본 정부가 사과하고 배상하는 그날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힘을 보탰다.
유권자센터 박제진 변호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이 에스더 이사장과 김동석 이사, 김동찬 대표 등 유권자센터 관계자들과 정해민 재외한인사회연구재단 이사장, 퀸즈칼리지 민병갑 교수, 김은주 한미문화예술연대 회장 등 한인사회 인사들이 다수 자리했고 한국에서 위안부 이슈에 지속적인 관심을 표하고 있는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도 자리했다.
미국측은 홀로코스트센터의 아서 플럭 박사, 다이안 콜 퀸즈보로커뮤니티칼리지 총장대행, 바바라 윈드 메트로웨스트 홀로코스트위원회 대표와 위안부할머니 초상화전을 열고 있는 스티브 카발로 작가 등이 나왔다. 또 토니 아벨라 뉴욕주상원의원과 데니스 홀로랜 시의원, 피터 쿠 시의원 등 지역정치인들이 자리했다.
홀로랜 시의원은 "독일은 최소한 홀로코스트에 대해 사과와 배상을 했다. 그런데 일본은 왜 그렇게 안 하는가?"하고 질타해 박수를 받았다. 박선영 의원은 "올해에만 16분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제 생존 할머니들은 60여분 남아 계시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공식 인정하고 후속 조치를 취하도록 여기 계신 분들 모두가 힘을 합치자"고 호소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시차 때문에 피로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피곤하면 전쟁을 못한다. 일본이 사과하는 그날까지 수요집회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난 아플 수가 없다"고 말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2007년 미 의회가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할때 의회 증언을 한 바 있는 이용수 할머니는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이런 행사를 열어줘 너무나 고맙다. 홀로코스트 생존 할머니들도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바란다"고 덕담을 했다.
미주 최초의 위안부기림비 조경을 무료로 제공한 백영현 1492그린클럽회장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형상화한 사철나무 분재액자를 아서 플럭 박사에게 증정해 눈길을 끌었다.
백영현 회장은 청중들에게 "뉴저지 팰리세이즈팍에 조성된 위안부기림비에는 한국산 미스김 라일락과 함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상징하는 작은 나무가 있다. 부디 이 분들의 아픔을 헤아려 달라. 우리가 힘을 합치면 반드시 후대에 좋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행사 전후로 미국 청중들은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서명 작업에 적극 참여하고 대형 배너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격려하는 메시지를 적는 등 숨겨진 일본의 전쟁범죄에 공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