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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リラン"を歌う沖繩人々..徴用の歴史を抱く


アリランを歌う ‘旧ダカーお爺さん’

アリランを歌う ‘旧ダカーお爺さん’


ミヤコ島.

沖繩から飛行機で 45分位もう南に飛ばなければならない日本よりはむしろ台湾にもっと近い南国の島だ.

日本軍に属して強制労役に動員された朝鮮人徴用部, いわゆる "軍属"に対する資料を調査する中現地ミヤコ活動家たちから島に "アリラン川"があるという話を聞くようになった.

"アリラン川?"

日の暮れる頃南国の島川端に座ってアリランを歌う朝鮮徴用者たちの姿が頭に浮び上がった. そのように "沖繩アリラン" 取材は始まった.

■ 70余年が経った ‘アリラン’を聞く.

ミヤコ島は休養地で有名な所だ. それほど日盛りなら南国の熱気が熱く照り付けてオジルゴリなのした.

"こんな暑さにどんなに働いただろうか?"という考えをしてアリラン川があるという所に向けた. しかしこれが何の仕事? 川がいなければならない席に "スプリンクラー" 一つだけ堂堂としたらある.

実はミヤコ島には "川"がいないと言う. 代わりにミヤコ島なまりで井や水があった所を "川"と表現するという説明. "アリラン川"という地名は過去朝鮮徴用者たちが田近くで流れた水を汲む整理してくれてからはお風呂や洗濯などをしながら水を使った所を称える言葉だった.

"朝鮮人々があそこにテントを張って暮しました. 毎日のように働いたんです. 一つに 50kgずつするセメント部隊を運びながら働いたんです"

当時朝鮮徴用者たちと一緒に日本軍労役に動員され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旧ダカーお爺さんは昨日の事のようにその時を話してくれた. 太平洋戦争ではない住民 6万人が住んだミヤコ島に日本軍 3万人が入って来て米軍との激戦を準備したし, 強制労役に動員されることは朝鮮徴用者たちや住民たちや同じで垂れた.

13歳年に見た朝鮮人々. そして旧ダカーお爺さんは全然以外な歌の調べを抜き出した.

"アリランが分かります. "アリランアリランアラリです. アリラン峠に移る" と..." 照れくさいように笑いながら歌うアリラン. 70余年ぶりに蘇った朝鮮徴用者たちから入って学んだアリラン調子だった.

■ きれいな朝鮮お姉さんが歌ったアリラン調子


ウエザトさんはお母さんからアリランを学んだ. お母さんが幼かった頃家近くに慰安所があったが朝なら末っ子弟(妹)を伏せてからは慰安所お姉さんたちに遊びに行くのが日課だった.

"お母さんが来ればそんなに可愛がってズォッデです. 弟(妹)を抱いてやって見てくれて, そして歌を教えてズォッデです."

その歌がアリランだった. ウエザトさんが歌ってくれるアリランにはリフレーンがもっと付いていた.

"アリランアリランアラリです....ヘイヘイです移る"

"とてもきれいできれいなオンニドルイオッデです. ところである日家宝だから慰安所でお姉さんたちが皆急に消えてボリョッドだと言う. どうして一言もしなくて行ってしまっただろうかとても悲しかったと..."

■ “アリランが韓国の国歌(国歌)ではないよ?”


沖繩に住むマツダお爺さんの分かる韓国語は "やれやれ死ぬ"だった.

"空襲がありました. あの時朝鮮人が横になっていたが, 元々痛かったのか韓国語で "やれやれ死ぬ. やれやれ死ぬ"と言いました. 後で周辺に何の意味なのかと問って見るから "死ぬようだ"という言葉だったんですよ."

それからは自分の家が朝鮮徴用者宿所で使われたと夕方なら入ったというその歌, アリランを聞かせた.

"アリランアリランアラリです. アリラン峠に移る. (ハングル)"

"私を捨ててどこに行くんですか. 一足跡も行けなくて発病出る(日本語)"

リフレーンはハングルなのに, 見た歌は日本語だ. ハングルも書く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した植民地治下, アリランも日本語と呼んだの. そのためか日本語部分は少しずつ違うように伝わっていた.

"十里も行けなくて発病出る" 部分をマツダお爺さんは "一足跡も行けなくて"と, またミヤコ島のウエザトさんは "1里も行けなくて"と呼んだ. どんなに口伝された私たちのアリラン調子だ.

歌を歌ってからマツダお爺さんはふと思い出したように記者を見たら, "ところでこの歌国歌(国歌)ではないよ?"と問う.

10台初中盤朝鮮徴用者たちに会った後 70余年が経つ間果して韓国人を何番(回)も会っただろうか? それでも彼らはあの時をくっきりと憶えてアリランをまだ歌うことができた.

"この前にはこの近く人々が歌をみんな分かったんです. ところでこれからはみんな世を去って..."

ミヤコ島の旧ダカーお爺さんは切ないようにこんなに言った. 遅かったが今でも "沖繩アリラン"の跡を盛り出すことができて幸いという安堵感が心一ところを擦れて行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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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점령하면 오키나와와 홋카이도를 독립국으로.

 "아리랑"을 부르는 오키나와 사람들..징용의 역사를 품다


아리랑을 부르는 ‘구다카 할아버지’

아리랑을 부르는 ‘구다카 할아버지’


미야코 섬.

오키나와에서 비행기로 45분 정도 더 남쪽으로 날아가야 하는 일본보다는 오히려 타이완에 더 가까운 남국의 섬이다.

일본군에 소속돼 강제 노역에 동원된 조선인 징용부들, 이른바 "군속"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던 중 현지 미야코 활동가들로부터 섬에 "아리랑 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아리랑 강?"

해 질 녘 남국의 섬 강가에 앉아 아리랑을 부르는 조선 징용자들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렇게 "오키나와 아리랑" 취재는 시작됐다.

■ 70여 년이 흐른 ‘아리랑’을 듣다.

미야코 섬은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만큼 한낮이면 남국의 열기가 뜨겁게 내리쬐며 어질거리게 했다.

"이런 더위에 어떻게 일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아리랑 강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 강이 있어야 할 자리에 "스프링클러" 하나만 떡 하니 있다.

사실 미야코 섬에는 "강"이 없단다. 대신 미야코 섬 사투리로 우물이나 물이 있던 곳을 "강"이라고 표현한다는 설명. "아리랑 강"이라는 지명은 과거 조선 징용자들이 논 근처에서 흐르던 물길을 정리해 주고는 목욕이나 빨래 등을 하며 물을 쓰던 곳을 일컫는 말이었다.

"조선 사람들이 저기에 텐트를 치고 살았어요. 매일 같이 일했죠. 하나에 50kg씩 하는 시멘트 부대를 나르며 일했죠"

당시 조선 징용자들과 같이 일본군 노역에 동원돼야 했던 구다카 할아버지는 어제 일처럼 그 때를 이야기해 줬다. 태평양 전쟁 말기 주민 6만 명이 살던 미야코 섬에 일본군 3만 명이 들어와 미군과의 격전을 준비했고, 강제 노역에 동원되기는 조선 징용자들이나 주민들이나 매한가지 처지였다.

13살 나이에 봤던 조선 사람들. 그리고 구다카 할아버지는 전혀 예상치 않은 노랫가락을 뽑아냈다.

"아리랑을 알아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라고..." 쑥스러운 듯 웃으며 부르는 아리랑. 70여 년 만에 되살아난 조선 징용자들로부터 들어 배운 아리랑 가락이었다.

■ 고운 조선 언니가 부르던 아리랑 가락


우에자토 씨는 어머니에게서 아리랑을 배웠다. 어머니가 어렸을 무렵 집 근처에 위안소가 있었는데 아침이면 막내 동생을 엎고는 위안소 언니들에게 놀러가는 게 일과였단다.

"어머니가 오면 그렇게 귀여워해 줬데요. 동생을 안아주고 봐주고, 그리고 노래를 가르쳐 줬데요."

그 노래가 아리랑이었다. 우에자토 씨가 불러주는 아리랑에는 후렴구가 더 붙어 있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헤이 헤이요 넘어간다"

"너무 예쁘고 고운 언니들이었데요. 그런데 어느 날 가보니 위안소에서 언니들이 모두 갑자기 사라져 버렸더래요. 왜 한마디도 안 하고 가버렸을까 너무 슬펐다고..."

■ “아리랑이 한국의 국가(國歌)는 아니죠?”


오키나와에 사는 마쓰다 할아버지가 아는 한국말은 "아이고 죽겠다"였다.

"공습이 있었어요. 그때 조선 사람이 누워있었는데, 원래 아팠는지 한국말로 "아이고 죽겠다. 아이고 죽겠다"고 했어요. 나중에 주변에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까 "죽을 것 같다"라는 말이더라고요."

그리고는 자기 집이 조선 징용자 숙소로 쓰였다며 저녁이면 들었다는 그 노래, 아리랑을 들려줬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한글)"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나요. 한 발자국도 못 가서 발병 난다(일본어)"

후렴구는 한글인데, 본 노래는 일본어다. 한글도 쓰지 못하게 하던 식민지 치하, 아리랑도 일본어로 불렀단다. 그래서인지 일본어 부분은 조금씩 다르게 전해지고 있었다.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부분을 마쓰다 할아버지는 "한 발자국도 못 가서"라고, 또 미야코 섬의 우에자토 씨는 "1리도 못 가서"라고 불렀다. 어떻게 구전됐던 우리네 아리랑 가락이다.

노래를 부르고 난 마쓰다 할아버지는 문득 생각난 듯 기자를 보더니, "근데 이 노래 국가(國歌)는 아니죠?"라고 묻는다.

10대 초중반 조선 징용자들을 만난 뒤 70여 년이 흐르는 동안 과연 한국인을 몇 번이나 만났을까? 그럼에도 그들은 그때를 또렷이 기억하며 아리랑을 아직도 부를 수 있었다.

"예전에는 이 근처 사람들이 노래를 다들 알았죠. 그런데 이제는 다들 세상을 떠나서..."

미야코 섬의 구다카 할아버지는 안타까운 듯 이렇게 말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오키나와 아리랑"의 흔적을 담아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마음 한 켠을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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