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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の起業者・労働者を襲う経済状況の悪化 「その日暮らし」「恐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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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の起業者・労働者を襲う経済状況の悪化 「その日暮らし」「恐怖」

2018年09月17日13時12分
[ⓒ 中央日報/中央日報日本語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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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増しに高まる就職の障壁を避け創業を選んだ「若い社長」らも憂いが深まっている。最低賃金引き上げの余波で従業員採用に対する負担が大きくなった上に「週52時間勤務制」以降では会食のお客まで大幅に減っているためだ。江原道春川市(カンウォンド・チュンチョンシ)で鶏料理専門店をするパクさん(27)は今月初めに20平方メートルの店を出した。昨年2月にパクさんが生まれて初めてオープンした店は妻と2歳になった娘を養う唯一の生計手段だ。

  高校時代から飲食店を開くのが夢だったパクさんは高校3年生の時に韓国料理の資格を取った。大学でホテル料理学を専攻した彼は軍除隊後にソウルの梨泰院(イテウォン)とヨンシンネなどの牛肉・鶏肉専門店で働き創業の夢を育てたが結果は惨憺たるものだった。不況の中でどうにか店を運営しているところに最低賃金引き上げと過去最悪クラスの猛暑など悪材料が重なったのだ。パクさんは「週52時間勤務制以降お客が明確に減った上にこの夏に続いた猛暑と台風のため食材価格が2~5倍まで上がったことも打撃が大きかった。開業後は1日の稼ぎで1日をどうにか暮らしているが、まるでその日暮らしになったようだった」と話した。

  雇用環境が悪化し既存の就業者も大きな困難を経験している。サムスン重工業協力会社でフォークリフトドライバーとして働いたキム・ソンジンさん(仮名、48)は4月に会社を辞め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従業員150人が働いていた会社が景気悪化で仕事が減ったためリストラを実施したのだ。キムさんは造船業が好況だった2007年と2008年には300万ウォン(約30万円)ほどの月給をもらっていたが、退社直前には200万ウォンまで減った。造船業が不況に入り込んだ2016年から各種手当てや給与が相次いで削られ月給袋が薄くなったのだ。

  キムさんは現在失業給与150万ウォンほどと妻が保育施設の補助教師をして稼ぐ100万ウォンで生活している。失業後に家計支出を大きく減らしたが、息子2人の教育費と生活費をまかなうには厳しい状況だ。キムさんは失業後に求職サイトや地元の雇用福祉センターなどを通じて仕事を探したが現在まで再就職できていない。キムさんは「月給水準を離れ50歳を見据える年齢では再就職が難しいというのが最大の恐怖。11月には失業給与も切れるが今後どうやって暮らしていくか漠然としており眠れない」と話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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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업자·노동자를 덮치는 경제 상황의 악화 「하루살이」 「공포」


한국의 기업자·노동자를 덮치는 경제 상황의 악화 「하루살이」 「공포」

2018년 09월 17일 13시 12분
[(c) 중앙 일보/중앙 일보 일본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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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높아지는 취직의 장벽을 피해 창업을 선택한 「젊은 사장」등도 슬픔이 깊어지고 있다.최저 임금 인상의 여파로 종업원 채용에 대한 부담이 커진 후에 「주 52시간 근무제」이후에서는 회식의 손님까지 큰폭으로 줄어 들고 있기 (위해)때문이다.강원도 춘천시(칸워드·틀톨시)에서 닭요리 전문점을 하는 박씨(27)는 이번 달 초에 20평방 미터의 가게를 냈다.작년 2월에 박씨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오픈한 가게는 아내와 2세가 된 딸(아가씨)를 기르는 유일한 생계 수단이다.

고교시절부터 음식점을 여는 것이 꿈이었던 박씨는 고교 3 학년때에 한국요리가 자격을 취득했다.대학에서 호텔 요리학을 전공한 그는 군제대 후에 서울의 이태원(이태원)과 연신내등의 쇠고기·닭고기 전문점에서 일해 창업의 꿈을 길렀지만 결과는 참담이라는 자였다.불황 중(안)에서 어떻게든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최저 임금 인상과 과거 최악 클래스의 무더위 등 악재료가 겹쳤던 것이다.박씨는 「주 52시간 근무제 이후 손님이 명확하게 줄어 든 후에 이번 여름에 계속 된 무더위와 태풍 때문에 식재 가격이 2~5배까지 오른 것도 타격이 컸다.개업 후는 1일의 돈벌이로 1일을 어떻게든 살고 있지만, 마치 하루살이가 되는 것 같았다」라고 이야기했다.

고용 환경이 악화되어 기존의 취업자도 큰 곤란을 경험하고 있다.삼성 중공업 협력 회사에서 포크리프트 드라이버로서 일한 김·손 진씨(가명, 48)는 4월에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종업원 150명이 일하고 있던 회사가 경기악화로 일이 줄어 들었기 때문에 정리해고를 실시했던 것이다.김씨는 조선업이 호황이었던 2007년과 2008년에는 300만원( 약 30만엔)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었지만, 퇴사 직전에는 200만원까지 줄어 들었다.조선업이 불황에 비집고 들어간 2016년부터 각종 치료나 급여가 연달아 깎아져서 월급봉투가 얇아졌던 것이다.

김씨는 현재 실업 급여 150만원 정도와 아내가 보육 시설의 보조 교사를 해 버는 100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실업 후에 가계 지출을 크게 줄였지만, 아들 2명의 교육비와 생활비를 조달하려면 어려운 상황이다.김씨는 실업 후에 구직 사이트나 현지의 고용복지 센터등을 통해서 일을 찾았지만 현재까지 재취직 되어 있지 않다.김씨는 「월급 수준을 떨어져 50세를 응시하는 연령에서는 재취직이 어렵다고 하는 것이 최대의 공포.11월에는 실업 급여도 끊어지지만 향후 어떻게 살아 갈까 막연히 있어 잘 수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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