メインへ

KJCLUB 日韓文化交流へようこそ。

日本学者 ¥"日本は過去を反省しなければ割¥"

閲覧数 : 139
KO 255 loljaps 2,406,889 / 2,811,753

殖民近代化の恩恵は少数日本人が一人占め
総理談話真正性ないまた謝り? 行き違って
フィジーそでなしの短衣と支配者の歴史認識はドル
相互不信ないと地域共同体も可能で

1910年 8月 29日韓日強制併合条約公布以後 36年間持続した日帝の韓国強制占領は韓国民族史で一番不幸な事件だった. 主体的な近代国民国家を樹立する機会を忘れてしまったし, 類例ない強圧統治は数え切れない物的・精神的傷と後遺症を残した.

韓日強制併合条約が公布されてから必ず 100年になる 29日を控えて韓日両国の重鎭歴史学者であるチョン・ゼジョン(59) 北東アジア歴史財団理事長と みずの Naoki(水野直樹・60) 京都台人文科学研究所教授の対談を用意した. 去る 25日北東アジア歴史財団で会った二人は日本の殖民支配がもたらした両国の逆蛇蝎等の原因と解法を模索して, 両国が真正な歴史のパートナーになるためにはどんな努力が必要するかどうかに対して話を交わした.

- 日本の朝鮮に対する殖民統治の性格に対してどんなに評価するか. 西欧帝国主義国々の殖民統治と比べたら.

 

殖民近代化の恩恵は少数日本人が一人占め
総理談話真正性ないまた謝り? 行き違って
フィジーそでなしの短衣と支配者の歴史認識はドル
相互不信ないと地域共同体も可能で

1910年 8月 29日韓日強制併合条約公布以後 36年間持続した日帝の韓国強制占領は韓国民族史で一番不幸な事件だった. 主体的な近代国民国家を樹立する機会を忘れてしまったし, 類例ない強圧統治は数え切れない物的・精神的傷と後遺症を残した.

韓日強制併合条約が公布されてから必ず 100年になる 29日を控えて韓日両国の重鎭歴史学者であるチョン・ゼジョン(59) 北東アジア歴史財団理事長と みずの Naoki(水野直樹・60) 京都台人文科学研究所教授の対談を用意した. 去る 25日北東アジア歴史財団で会った二人は日本の殖民支配がもたらした両国の逆蛇蝎等の原因と解法を模索して, 両国が真正な歴史のパートナーになるためにはどんな努力が必要するかどうかに対して話を交わした.

- 日本の朝鮮に対する殖民統治の性格に対してどんなに評価するか. 西欧帝国主義国々の殖民統治と比べたら.

 

 

チョン・ゼジョン= 西欧帝国主義国々も植民地経営をしたが国境を接している国を植民地にした例はない. 日本が朝鮮支配の名分で ¥"同窓同種¥"(同文同種・みたいな漢字を書いて同じ黄色人種)を立てたように両国は歴史的・文化的に近いところ, こんな国を植民地化した場合はない. 日本はまたいわゆる内鮮一体を立てて声明(名前)を日本式に変えるとか 日本語 使用を強制するとかする強硬な同化政策を使ったがこれは一民族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根こそぎ破壊する統治方式だった. 日本は朝鮮を大陸進出の足場にした. 植民地社会に社会, 経済 インフラを構築したがこれもめったに見られない方式だ. もちろん経済開発をしたと言うがその過失は主に日本人たちに集中された.

〓みずのNaoki= 日本の植民地政策は同化政策を強化しながらも差を解消しないとか差を残したまま同化する方式だった. 西洋帝国主義国々はフィジーそでなしの短衣の一部, エリートだけ同化しようとする政策を使った. たとえばフランスは植民地アルジェのエリートたちをキリスト教で改宗させてプランス語を教育してフランス市民で作ろうとした. そして彼らを全面的にフランス市民で待偶した. 一方日本はすべての朝鮮人を日本人で同化しようと思ったが実際に日本人と同等な地位と権利を付与しなかった. 日本語常用, 皇国臣民化政策みたいなことは朝鮮人を戦争に動員しようとする政策だった.

- 論難があるが植民地近代化論に批判的な学者たちも植民地時期朝鮮が近代的面貌を取り揃えるようになった点を否認しない. 植民地近代化の性格をどんなに見なければならないか.

〓情= 植民地近代化論は平均寿命の増加, 就学率・貿易額の拡大, 道路・鉄道の拡充などを重視することで主に経済的側面に注目したのだ. しかし植民地という特殊状況で成り立ったという点を考慮しなければならない. パイは大きくなったが果してその近代化の過失を誰が享受したのかを問わなければならない. 植民地ではない朝鮮人が 2,500万名, 再造(在朝) 日本人は 70万名だった. ところで朝鮮資本の 90%が日本人の手元にあったし大企業と大土地の経営者も日本人が大多数だった. これを正常国民国家の経済成長のようだと見られるか.

〓みずの= 結果的には都会化が進行されたし都市で人口が寄り集まったし, 生活ぶりにおいて近代化になった部分はあったと言えるようだ. しかし朝鮮社会全体を見た時近代的な生活の恩恵は極少数に集中された. 植民地近代の性格を解き明かす時経済的側面を重視する ¥"近代化¥"と文化・社会像を注目する ¥"近代性¥"は仕分けされる必要がある. また植民地朝鮮に移植された近代は西洋的近代とは違う ¥"日本的近代¥"という性格もあった. あらゆる問題を総合的に分析しなければならない.

〓情= 近代化を ¥"良いの¥" または ¥"成さ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という肯定の視覚だけで見てはいけない. 近代化の過程では精巧な暴力と力強い動員が横行した. 肯定と不定の側面を勘案して問題を理解しなければならない.

- 去る 10日発表された菅直人日本総理の談話に対して評価したら.

〓みずの= 日本内では談話の真正性が不十分だったという意見とどうして韓国に何番(回)も謝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という意見が行き違ったが日本言論媒体たちはたいてい肯定的に評価するようだ. 併合条約が ¥"無效¥" と言わなかったが韓国人たちの ¥"意に比べる植民地支配¥"という表現は, 私の考えにそれを迂迴的に認めたことと思う. ¥"反省と謝りの意味を表明する¥"と言った 1995年村山談話より先に進んだと思う.

〓情= 韓国併合が強制的で不法的で不当に成り立ったと思う韓国人たちの境遇で見ればすごく不十分だ. しかし基準を見下げれば 3種点で評価することができる. 日本総理が強制併合 100年に合わせて談話を発表したという点, 韓国人の意思に比べて殖民支配をしたということを認めた点, 口先だけ止んだのではなく朝鮮王室儀軌返還, サハリン韓国人問題の解決など行動プランを提示した点だ. 不十分な点は両国が協議を通じて進展させなければならない.

- 日本総理が何回謝っても韓国人たちは ¥"真正性がない¥"と批判して日本人たちは ¥"いつまで謝りばかりしなければならないか¥"と不平を言う. どんなに接点を尋ねることができるか.

〓情= 韓国人たちはフィジーそでなしの短衣として, 日本人たちは支配者として韓国強制併合以後の 近現代史を理解するから視覚車が大きいしかない. 歴史認識の接点を尋ねるためには先に事実を正確に理解しなければならない. そして相手の境遇で事態を眺めようとする易地思之の姿勢が必要だ.

〓みずの= 日本人と韓国人の歴史認識が他のものは変ではない. 重要なことは ¥"どうして相手がそんな考えをするか?¥"を理解しようとする姿勢だ. 今まで日本も韓国もこの問題を考えて見なかった.

- 近現代史教育を意図的にそっぽを向いた日本や植民史観克服を歴史教育の至上課題にした韓国皆問題ではなかっただろうか.

〓みずの= 一般人たちの歴史認識は教育よりはむしろ歴史ドラマや映画みたいな媒体に影響を受ける. このごろ日本では明治時代を肯定的に解釈した司馬遼太郎(司馬遼太郎)の歴史小説 <丘の上の雲>を原作にした TVドラマが人気だ. このドラマは日清戦争と露日戦争を通じて日本が強大国になったと言う歴史観を敷いている. 韓半島で戦争が起ったし朝鮮人たちが被害を被ったという事実は出ない. 韓国人たちも TV ドラマを通じて歴史を勉強して理解する場合が多くないか.

〓情= 植民地で解放された韓国が民族主義的歴史教育を実施したことは当たり前の事だ. 韓国の TVも 1年に二度, 3・1節と光復節を前後して歴史関連特集放送, ドラマをよく編成する. どんな視覚で構成するのかが重要なのにこの間まで無条件日本人は ¥"弾圧者¥", 韓国人たちは ¥"抵抗者¥"で描くのが大部分だった. 最近には植民地時期多様な類型の人間生活を見せてくれようとする方に変わっている. 歴史を見る視覚が広くなって深くなると思う.

- 韓国では日本民主党のアジア重視外交を見詰めている.

〓みずの= 冷戦体制が解体されながら日本は東アジアという世界の中でどんなに生き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問題に直面するようになった. アジアを重視することは当たり前の選択だと思う. しかしこれからよくできるかは分からない. 民主党政権の限界ではなく日本社会の限界のためだ. 冷戦期日本は アメリカと同盟関係を結んだが多くの日本人たちはまだその選択を重視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う. 戦争戦意 ¥"大東亜共栄圏¥"のような考えではないがアジア各国たちと対等にお互いに助ける関係を結ぶよりは日本が中心国家になって導い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考えが日本社会では支配的だ.

〓情= 韓中日を中心に東アジア各国の相互依存関係が深化している. 韓国の大日本, 対中国交易額は韓国とアメリカ, 韓国とヨーロッパ連合の交易額を飛び越えて韓国と日本は 1年に 500万名, 韓国と中国は 700万名が行ったり来たりする. 両国にどんな政権が立ち入っても現実的にアジア重視外交政策を広げるしかない. みずの教授が日本の限界を言ったが実は私たちも限界がある. 今のように南北関係が悪くなって韓中関係が緊張されればアメリカと日本にもっと密着するしかない. 東アジア地域の冷戦を緩和して平和に共存共栄する方法を悩まなければならない.

- ヨーロッパ共同体で見るように地域共同体の形成は世界史蹟課題だ. 韓日関係の発展を元肥で東アジア共同体を成すことができるか.

〓みずの= 民主党が出帆して鳩山の前総理が東アジア共同体に対して話したりしたが具体的に先に進んだことはないようだ. 両国政府次元では自由貿易協定と係わる話が行き交っているようなのに協定だけ結ぶと東アジア共同体になるのではない. 市民次元の交流が重要だと思う. 観光客数百万名が行き交うより両国の市民たちが同時代を暮しているという共感台を形成するのがもっと重要だ.

〓情= 大東亜共栄圏を試みてから挫折した経験がある日本や, 中華帝国という歴史的経験を持っている中国は東アジア共同体話をあまりしない. 私たちがこんな話をすることは意味があるがヨーロッパ共同体を想像すれば少なくとも 20‾30年が経つと可能な話だと思う. 株券の相当部分を共同体に委譲して安保も一緒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今のような相互不信と対立と葛藤では易しくない. 現実を認めて共同の利益になる分野から一緒にしてみれば相手に対する理解度深くなって不信感も消えるでしょう.

- 韓日強制併合 100年は歴史学者の立場(入場)でも意味が新しいだろう. 今後の両国歴史学者の前に置かれた課題は何か.

〓情= 10年前に比べれば韓日関係研究は飛躍的に発展した. 今までは 韓国史なら韓国史, 日本史なら日本史で自分の国資料にだけ研究したが今は資料共有の時代だ. 東アジアという, 一歩進んで世界史という幅広い視野で歴史を眺めなければならない. 私は去る 20余年間韓日間歴史対話, 韓日共同歴史教材編纂に力を注いで来た. 今後ともそんな努力を続いたら両国の相互理解に少しでもお手助けになることができないか思う.

〓みずの= 10年, 20年前だけでも韓日歴史学者たちがお互いに歴史に対して話す機会が来ると思うことができなかった. 日本の歴史研究者として殖民支配の歴史をまだ解き明かすことができない部分が多い. 創氏改名, 皇国臣民の敍事, 治安維持法など殖民地下日常での支配政策を解き明かす研究をしたい. 日本人たちは韓半島の侵略と支配が結果的に南北分断につながったという事実を理解することができずに併合は単純に 100年前の歴史的事実だと思う人が多い. しかし韓国人たちにこの事件は南北分断につながっている拐在的事件だと思う. こんな歴史的意味を日本社会に伝える役目をしたい.

原文を見る

일본 학자 "일본은 과거를 반성해야 할"

식민 근대화의 혜택은 소수 일본인이 독식
"총리 담화 진정성 없다" "또 사과?" 엇갈려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역사인식은 달라
상호 불신 없어야 지역공동체도 가능해

1910년 8월 29일 한일강제병합조약 공포 이후 36년간 지속된 일제의 한국 강점은 한국 민족사에서 가장 불행한 사건이었다. 주체적인 근대 국민국가를 수립할 기회를 잃어버렸고, 유례없는 강압통치는 헤아릴 수 없는 물적ㆍ정신적 상처와 후유증을 남겼다.

한일강제병합조약이 공포된 지 꼭 100년이 되는 29일을 앞두고 한일 양국의 중진 역사학자인 정재정(59)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과 미즈노 나오키(水野直樹ㆍ60)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의 대담을 마련했다. 지난 25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초래한 양국의 역사갈등의 원인과 해법을 모색하고, 양국이 진정한 역사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통치의 성격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통치와 비교한다면.

 

식민 근대화의 혜택은 소수 일본인이 독식
"총리 담화 진정성 없다" "또 사과?" 엇갈려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역사인식은 달라
상호 불신 없어야 지역공동체도 가능해

1910년 8월 29일 한일강제병합조약 공포 이후 36년간 지속된 일제의 한국 강점은 한국 민족사에서 가장 불행한 사건이었다. 주체적인 근대 국민국가를 수립할 기회를 잃어버렸고, 유례없는 강압통치는 헤아릴 수 없는 물적ㆍ정신적 상처와 후유증을 남겼다.

한일강제병합조약이 공포된 지 꼭 100년이 되는 29일을 앞두고 한일 양국의 중진 역사학자인 정재정(59)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과 미즈노 나오키(水野直樹ㆍ60)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의 대담을 마련했다. 지난 25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초래한 양국의 역사갈등의 원인과 해법을 모색하고, 양국이 진정한 역사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통치의 성격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통치와 비교한다면.

 

 

정재정=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도 식민지 경영을 했지만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예는 없다. 일본이 조선 지배의 명분으로 "동문동종"(同文同種ㆍ같은 한자를 쓰고 같은 황색인종임)을 내세운 것처럼 양국은 역사적ㆍ문화적으로 가까운데, 이런 나라를 식민지화한 경우는 없다. 일본은 또 소위 내선일체를 내세워 성명을 일본식으로 바꾼다든지 일본어 사용을 강제한다든지 하는 강경한 동화정책을 썼는데 이는 한 민족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통치방식이었다. 일본은 조선을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다. 식민지사회에 사회, 경제 인프라를 구축했는데 이것도 좀처럼 볼 수 없는 방식이다. 물론 경제개발을 했다고 하지만 그 과실은 주로 일본인들에게 집중됐다.

▦미즈노 나오키= 일본의 식민지정책은 동화정책을 강화하면서도 차이를 해소하지 않거나 차이를 남긴 채 동화하는 방식이었다.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은 피지배자의 일부, 엘리트만 동화하려는 정책을 썼다. 가령 프랑스는 식민지 알제리의 엘리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프랑스어를 교육해 프랑스 시민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을 전적으로 프랑스 시민으로 대우했다. 반면 일본은 모든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동화하려 했지만 실제로 일본인과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다. 일본어 상용, 황국신민화정책 같은 것은 조선인을 전쟁에 동원하려는 정책이었다.

- 논란이 있지만 식민지근대화론에 비판적인 학자들도 식민지시기 조선이 근대적 면모를 갖추게 된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식민지 근대화의 성격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정= 식민지근대화론은 평균수명의 증가, 취학률ㆍ무역액의 확대, 도로ㆍ철도의 확충 등을 중시하는 것으로 주로 경제적 측면에 주목한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라는 특수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된다. 파이는 커졌지만 과연 그 근대화의 과실을 누가 향유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식민지 말기 조선인이 2,500만명, 재조(在朝) 일본인은 70만명이었다. 그런데 조선 자본의 90%가 일본인의 수중에 있었고 대기업과 대토지의 경영자도 일본인이 대다수였다. 이것을 정상적 국민국가의 경제성장과 같다고 볼 수 있을까.

▦미즈노= 결과적으로는 도시화가 진행됐고 도시로 인구가 몰려들었고, 생활상에 있어서 근대화가 된 부분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조선사회 전체를 봤을 때 근대적인 생활의 혜택은 극소수에게 집중됐다. 식민지 근대의 성격을 해명할 때 경제적 측면을 중시하는 "근대화"와 문화ㆍ사회상을 주목하는 "근대성"은 구분될 필요가 있다. 또한 식민지 조선에 이식된 근대는 서양적 근대와는 다른 "일본적 근대"라는 성격도 있었다. 이런저런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정= 근대화를 "좋은 것" 또는 "이룩해야 할 것"이라는 긍정의 시각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근대화의 과정에서는 정교한 폭력과 강력한 동원이 난무했다. 긍정과 부정의 측면을 감안하여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 지난 10일 발표된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담화에 대해 평가한다면.

▦미즈노= 일본 내에서는 담화의 진정성이 불충분했다는 의견과 왜 한국에 몇 번이고 사과해야 하느냐는 의견이 엇갈렸지만 일본 언론매체들은 대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병합조약이 "무효" 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한국인들의 "뜻에 반한 식민지 지배"라는 표현은, 내 생각에 그것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라 생각한다. "반성과 사과의 뜻을 표명한다"고 했던 1995년 무라야마 담화보다 진전됐다고 본다.

▦정= 한국병합이 강제적이고 불법적이고 부당하게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처지에서 보면 대단히 불충분하다. 그러나 기준을 낮춰 보면 3가지 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일본 총리가 강제병합 100년에 맞춰 담화를 발표했다는 점, 한국인의 의사에 반해 식민지배를 했다는 것을 인정한 점, 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조선왕실의궤 반환, 사할린 한국인 문제의 해결 등 행동플랜을 제시한 점이다. 불충분한 점은 양국이 협의를 통해 진전시켜야 한다.

- 일본 총리가 여러번 사과를 해도 한국인들은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하고 일본인들은 "언제까지 사과만 해야 하느냐"라고 불평한다. 어떻게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정= 한국인들은 피지배자로서, 일본인들은 지배자로서 한국강제병합 이후의 근현대사를 이해하기 때문에 시각 차가 클 수밖에 없다. 역사인식의 접점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사실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처지에서 사태를 바라보려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미즈노= 일본인과 한국인의 역사인식이 다른 것은 이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왜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는가?"를 이해하려는 자세다. 지금까지 일본도 한국도 이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 근현대사 교육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일본이나 식민사관 극복을 역사교육의 지상과제로 삼았던 한국 모두 문제가 아니었을까.

▦미즈노= 일반인들의 역사인식은 교육보다는 오히려 역사드라마나 영화 같은 매체에 영향을 받는다. 요즘 일본에서는 메이지시대를 긍정적으로 해석한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역사소설 <언덕 위의 구름>을 원작으로 한 TV드라마가 인기다. 이 드라마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일본이 강대국이 됐다는 역사관을 깔고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졌고 조선인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나오지 않는다. 한국인들도 TV 드라마를 통해 역사를 공부하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정= 식민지에서 해방된 한국이 민족주의적 역사교육을 실시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TV도 1년에 두 번, 3ㆍ1절과 광복절을 전후해 역사 관련 특집방송, 드라마를 자주 편성한다. 어떤 시각에서 구성하느냐가 중요한데 얼마전까지 무조건 일본인은 "탄압자", 한국인들은 "저항자"로 묘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는 식민지시기 다양한 유형의 인간생활을 보여주려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역사를 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깊어지리라고 생각한다.

- 한국에서는 일본 민주당의 아시아 중시 외교를 주시하고 있다.

▦미즈노=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일본은 동아시아라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아시아를 중시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 잘될지는 모르겠다. 민주당 정권의 한계가 아니라 일본사회의 한계 때문이다. 냉전기 일본은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었는데 많은 일본인들은 아직도 그 선택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 전의 "대동아공영권"과 같은 생각은 아니지만 아시아 각국들과 대등하게 서로 돕는 관계를 맺기보다는 일본이 중심국가가 돼 이끌어가야한다는 생각이 일본사회에서는 지배적이다.

▦정= 한중일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각국의 상호의존관계가 심화하고 있다. 한국의 대일본, 대중국 교역액은 한국과 미국, 한국과 유럽연합의 교역액을 뛰어넘고 한국과 일본은 1년에 500만명, 한국과 중국은 700만명이 왔다갔다한다. 양국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현실적으로 아시아 중시 외교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 미즈노 교수가 일본의 한계를 말했는데 사실 우리도 한계가 있다.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한중관계가 긴장되면 미국과 일본에 더욱 밀착할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지역의 냉전을 완화하고 평화롭게 공존공영하는 방법을 고민해야한다.

- 유럽공동체에서 보듯 지역공동체의 형성은 세계사적 과제다. 한일관계의 발전을 밑거름으로 동아시아공동체를 이뤄낼 수 있을까.

▦미즈노= 민주당이 출범하며 하토야마 전 총리가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긴 했는데 구체적으로 진전된 것은 없는 것 같다. 양국 정부 차원에서는 자유무역협정과 관련된 얘기가 오가고 있는 것 같은데 협정만 맺는다고 동아시아 공동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 차원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광객 수백만명이 오가는 것보다 양국의 시민들이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 대동아공영권을 시도했다가 좌절한 경험이 있는 일본이나, 중화제국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는 중국은 동아시아 공동체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유럽공동체를 상상하면 적어도 20~30년이 지나야 가능한 얘기라고 본다. 주권의 상당부분을 공동체에 이양하고 안보도 같이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상호 불신과 대립과 갈등으로는 쉽지 않다. 현실을 인정하고 공동의 이익이 되는 분야부터 함께하다보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불신감도 사라질 것이다.

- 한일강제병합 100년은 역사학자의 입장에서도 의미가 새로울 것이다. 향후 양국 역사학자들 앞에 놓인 과제는 무엇인가.

▦정= 10년 전에 비하면 한일관계 연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지금까지는 한국사면 한국사, 일본사면 일본사로 자기 나라 자료로만 연구했는데 지금은 자료 공유의 시대다. 동아시아라는, 더 나아가 세계사라는 폭넓은 시야에서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 나는 지난 20여년간 한일간 역사대화, 한일 공동 역사교재 편찬에 주력해왔다. 앞으로도 그런 노력을 계속한다면 두 나라의 상호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즈노= 10년, 20년 전만해도 한일 역사학자들이 서로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일본의 역사연구자로서 식민지배의 역사를 아직도 해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창씨개명, 황국신민의 서사, 치안유지법 등 식민지하 일상에서의 지배정책을 해명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 일본인들은 한반도의 침략과 지배가 결과적으로 남북분단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병합은 단순히 100년 전의 역사적 사실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이 사건은 남북분단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재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역사적 의미를 일본사회에 전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いいね・コメントにはログインが必要です。

コメント ( 1 )

投稿一覧

2,406,889 / 2,811,753

  1. 閲覧数 : 375
    JA 0 ひょうたん
  2. 閲覧数 : 323
    JA 10 toshima59
  3. JA 255 stranger Z
  4. JA 255 Member_50274
  5. KO 255 ATOMIC
  6. JA 190 papermoon
  7. KO 255 yunsungkwan
  8. KO 255 kys112p
  9. KO 255 loljaps
  10. KO 255 kys112p
  11. JA 0 corosanta01
  12. 1 閲覧数 : 424
    JA 255 ihmai1
  13. 閲覧数 : 270
    JA 10 enjoyrnaster2
  14. JA 0 bokunenjin
  15. KO 255 jokbal2
  16. 閲覧数 : 216
    JA 0 ひょうたん
  17. KO 255 pcam2580
  18. KO 255 kys112p
  19. JA 255 blue_blue_blue
  20. JA 255 Member_51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