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을 들고 무저항 평화시위 형식의 기원은 1960년대 미국의 반전시위(아마도 히피들이 주도했으리라고 추측)
- 한국에서의 첫 사례에 대한 說은 두가지
: 1992년 한 무료 온라인 PC 통신 서비스 유료화 정책에 반대한 시위
: 2002년 주한미군 tank 사고에 의한 여고생 사망사건 진상규명 요구 시위
- 배경
: 문화행사의 형태를 빌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에 의한 야간시위 금지 조항 회피
: 야간에 시행하는 문화행사 형식의 시위를 통해 직장인, 가족단위 참여 촉진
- 의미와 평가
: 비폭력 무저항 시위
: 시민사회의 자발적, 자생적 시위 (주도 또는 지원의 주체 집단, 세력이 없다.)
: 시민들의 정치 권력 적극적 발휘
: 구체적이고 제도적 대안으로의 발전성 부족
: 소수 선동 단체에 의한 파시즘적 집단주의로 악용 가능성 우려 (예: 미국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참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457037&cid=46634&categoryId=46634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24858&cid=40942&categoryId=31615
https://ko.wikipedia.org/wiki/촛불_집회 (wiki백과의 web에서 "촛불집회"로 검색 / direct 링크 복사 금지)
하지만, 박근혜의 탄핵 촛불집회는 1회부터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라는 이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전문 시위조직이 주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11월에 대대적인 강성 시위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촛불집회 1회부터 강인하게 요구된 시민들의 "평화시위", "물리적 충돌, 폭력은 절대 시도해서도 안된다." 분위기 그리고 끝까지 냉정을 지킨 서울 경찰청과 언론의 분위기에 압박되어, 촛불집회 주도에만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라는 폭력적이고 분노를 선동하는 slogan도 3차 집회까지만 사용되고, 이후에는 사라진다.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모이자!_분노하자!_내려와라_박근혜_시민_촛불 (wiki백과의 web에서 "모이자!_분노하자!내려와라_박근혜_시민_촛불"로 검색 / direct 링크 복사 금지)

< 차분한 분위기의 남녀노소 시위 참여자들 >
< 시위에 참여한 아이들과 엄마 >

< 시위 참여 시민들을 위한 자원봉사의 무대 공연 >

<즐거운 축제 같은 시위 >

< 시위 종료 후의 자발적 쓰레기 청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