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농민들은 자신이 갑자기 로마 시민이 되었음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이 호머 헤이전플럭 덥스(1892~1969·미국 출신 영국 중국학자) 때문이었다. 덥스는 1955년 런던에서 열린 중국학회에서 큰 화제를 모은 강연을 했다. 오랜 세월 많은 학자들이 로마와 중국이라는 두 거대 제국이 왜 그렇게 늦게 접촉했는지 궁금해했다. 중국 사가들은 기원후 166년이 돼서야 한나라 황제 앞에 로마사절단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덥스에 따르면 로마인들은 그보다 200여년 앞서 중국에 나타났다.
이 장대한 서사시는 기원전 53년에 마르쿠스 크라수스(기원전 115~기원전 53년 로마 삼두정치 시절 카이사르, 폼페이우스와 함께 집정관을 맡았던 정치인)가 파르티아와 전쟁을 벌였을 때부터 펼쳐진다. 이 전쟁에서 로마군의 절반이 죽고 4분의 1이 포로로 잡히는 참극이 벌어진다. 로마의 학자 대(大)플리니우스(기원전 23~기원후 79년)에 따르면, 파르티아군은 이 포로들을 오늘날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인 동쪽 국경의 수비대로 투입했다고 한다.
덥스에 따르면, 몇몇 포로는 도망쳐서 훈족 군대에 합류했다. 기원전 36년에 훈족은 한나라 군대에 의해 전멸했다. (오늘날 카자흐스탄 타라즈에서 벌어진 한과 훈족의 "지지대전"을 말한다. 훈족 군대에 합류한 로마 군인들은 훈족의 용병이 돼 한나라와의 전투에 참여했다가 다시 한나라군의 포로가 돼 중국에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덥스는 이 포로 중 145명이 로마 군인이었다고 본다.
중국 사가들은 훈족 왕이 살해됐을 때 항복한 훈족 용병 145명이 누구였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덥스는 오로지 로마 군인들만이 끝까지 싸울 용기를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마침내 145명의 포로가 정착한 마을 이름을 알게 된다. 바로 "리첸"이다. 이렇게 로마제국이 처음으로 묘사된 것이다.
외롭고도 아름다운 마을 리첸은 중국 북서부 간쑤성의 고비사막 지역에 있다. 초원에 납작 엎드린 진흙집들이 있고, 저 멀리 눈 덮인 산맥이 보이는 곳이다. 리첸은 세상 끝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아무도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들의 피부는 눈처럼 희다. 두 눈은 한여름의 하늘처럼 파랗다. 머리카락은 금발이나 붉은색의 곱슬머리다. 그들은 "노랑머리 외국인들"처럼 보이는 "피부병"을 갖고 있었다. 누구도 아이들이 왜 이런 모습으로 생겼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여러분은 로마 군대의 후손"
1990년 이탈리아인들이 이 마을을 찾아왔다. 마을 사람들 중 아무도 그들이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왔는지 몰랐다. 이탈리아인들의 도착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들은 키가 크고 무섭게 생긴 코를 가진 진짜 외국인이었다. 그들은 큼직한 발로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때마다 수백명의 농부가 뒤를 쫓았다. 그들은 폭탄 같은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여러분은 로마 군대의 후손입니다."
리첸 마을 사람 모두 길거리에 모여 서로의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로마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누군가 "어쩌면 우리 곧 외국에 나갈지도 모르겠어"라고 하자 다른 사람이 "우리 아이들을 유학 보낼 수도 있겠군"이라고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