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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회 회원수는 실제는 9만명정도 .. 합방논의를 안 사람은 매우 극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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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분류: 자유주제 KO 0 Member_67398 4,566

한국정부나 한국인들이 확실히 알아야 할 점이 있다. 일본의 우파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역사왜곡과 망언행동을 할 경우 반드시 연대를 형성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자민당 내의 ‘교육기본법 검토 특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5월 말 창씨개명에 대해 망언을 한 아소 다로(麻生太郞) 의원이고, 그 아래는 니시오 간지가 대표의원으로 있다.

그리고 위의 특명위원회 주요 멤버에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집필진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시하라 지사는 2001년에 ‘새 역사교과서’ 채택을 지지했고, 같은해 7월 도쿄농아학교 등 여러 학교의 ‘새 역사교과서’ 채택을 억지로 강요했다. 니시오 간지가 이론적으로 응원하고 이시하라나 아소 같은 우파 정치인들이 그것을 근거로 망언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망언을 공식 사료화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우파 지식인들이 정치가들에게 왜곡된 자료와 왜곡된 논리를 제공함으로써 바로 그들이 말하는 ‘새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식민지시대를 생생하게 경험한 연장자들이 앞으로 10년 정도만 지나면 대부분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들은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자신들이 지금 내세우고 있는 망언을, 그 시대의 증언자들이 다 사라지고 난 다음에 ‘새로운 진실’로서 남기기 위해서다.

그들의 왜곡된 자료활용 수법을 앞에서 말한 니시오 간지의 망언을 통해 살펴보자. 한일합방 당시 최대의 친일단체는 일진회(一進會)였다. 이 일진회에서 ‘합방청원서’를 일제에 제출하였는데, 당시 자료 중 일진회 회원 수가 100만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 있다. 니시오는 이 자료를 근거로 이 같은 망언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100만명이라는 숫자 자체가 바로 왜곡된 것이다. 합방 직전에 실시된 1910년 8월 4일의 경무총감부 공식조사에서 일진회 회원 수는 약 9만명이었다.

100만이라는 숫자는 1906년 11월에 일진회 자체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보낸 서한 속에 썼던 숫자다. 친일파들이 일제에 잘 보이기 위해 부풀려놓은 숫자인데도 니시오는 일부러 자료검증을 하지 않은 채 망언에 이용했다. 당시 일진회 주간이었던 이용구(李容九)는 1907년 소네 부통감에게 보낸 서한 속에 ‘(합방 논의를) 아는 사람은 회원 중에도 극히 드물다’고 썼다. 즉 한일합방은 결코 한국인의 총의도 아니고, 한민족 다수가 찬성한 일도 아니었음이 진실이다.

이처럼 일본의 우파 지식인들은 검증되지도 않고 왜곡된 역사자료를 공식자료처럼 내세워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고 당당하게 발표하고 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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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進会会員数は実際は 9万名位 .. 合邦論議が分かった人は非常に極少数

韓国政府や韓国人たちが確かに分からなければならない点がある. 日本の右派知識人と政治家たちは歴史歪曲と妄言行動をする場合必ず連帯を形成するという事実だ. 例えば自民党内衣 ‘教育基本法検討特命委員会’ 委員長は去る 5月末創氏改名に対して妄言を言った分かりなさい茶炉(麻生太郎) 議員で, その下は西尾幹二が代表議員である.

そして上の特命委員会主要メンバーに ‘新しい歴史教科書を作る集まり’の執筆陣たちが含まれている. そしてIshihara支社は 2001年に ‘新歴史教科書’ 採択を支持したし, 同年 7月東京聾唖学校など多くの学校の ‘新歴史教科書’ 採択を無理やりに強要した. 西尾幹二が理論的に応援して李侍下だか分かりなさい同じ右派政治家たちがそれを根拠で妄言を繰り返すのだ. そしてその妄言を公式史料化しようとする一連の動きがおこっている.

現在日本では右派知識人たちが政治家たちに歪曲された資料と歪曲された論理を提供することでまさに彼らが言う ‘新歴史’を使って行っている. 植民地時代をいきいきと経験した目上たちがこれから 10年位さえ経てば大部分世を去るということを念頭に置いて彼らは緻密に動いている. 自分たちが今立てている妄言を, その時代の証言者たちがすべて消えてから後に ‘新しい真実’として残すためだ.

彼らの歪曲された資料活用手法を前で言った西尾幹二の妄言を通じてよく見よう. 韓日併合当時最大の親日団体は一進会(一進会)だった. この一進会で ‘合邦請願で’を日製に提出したが, 当時資料の中で一進会会員数が 100万名だったと記録されていることがある. 西来るこの資料を根拠にこのような妄言を言ったのだ. しかし 100万名という数字自体がすぐ歪曲されたのだ. 合邦直前に実施された 1910年 8月 4日の警務総監部公式調査で一進会会員数は約 9万名だった.

100万だという数字は 1906年 11月に一進会自体が伊藤博文(伊藤博文)に送った書簡の中に使った数字だ. 親日派たちが日製にちゃんと見えるために脹らましておいた数字なのに西来るわざわざ資料検証をしないまま妄言に利用した. 当時一進会週刊だった利用区(李容九)は 1907年牛のブトングガムに送った書簡中に ‘(合邦論議を) 知り合いは会員の中にも極めて珍しい’と書いた. すなわち韓日併合は決して韓国人の総意でもなくて, 韓民族多数が賛成したこともではなかったことが真実だ.

このように日本の右派知識人たちは検証されなくて歪曲された歴史資料を公式資料のように立てて ‘歴史に記録されている’と堂堂と発表している


ホサカ維持世宗大教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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