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나 한국인들이 확실히 알아야 할 점이 있다. 일본의 우파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역사왜곡과 망언행동을 할 경우 반드시 연대를 형성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자민당 내의 ‘교육기본법 검토 특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5월 말 창씨개명에 대해 망언을 한 아소 다로(麻生太郞) 의원이고, 그 아래는 니시오 간지가 대표의원으로 있다.
그리고 위의 특명위원회 주요 멤버에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집필진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시하라 지사는 2001년에 ‘새 역사교과서’ 채택을 지지했고, 같은해 7월 도쿄농아학교 등 여러 학교의 ‘새 역사교과서’ 채택을 억지로 강요했다. 니시오 간지가 이론적으로 응원하고 이시하라나 아소 같은 우파 정치인들이 그것을 근거로 망언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망언을 공식 사료화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우파 지식인들이 정치가들에게 왜곡된 자료와 왜곡된 논리를 제공함으로써 바로 그들이 말하는 ‘새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식민지시대를 생생하게 경험한 연장자들이 앞으로 10년 정도만 지나면 대부분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들은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자신들이 지금 내세우고 있는 망언을, 그 시대의 증언자들이 다 사라지고 난 다음에 ‘새로운 진실’로서 남기기 위해서다.
그들의 왜곡된 자료활용 수법을 앞에서 말한 니시오 간지의 망언을 통해 살펴보자. 한일합방 당시 최대의 친일단체는 일진회(一進會)였다. 이 일진회에서 ‘합방청원서’를 일제에 제출하였는데, 당시 자료 중 일진회 회원 수가 100만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 있다. 니시오는 이 자료를 근거로 이 같은 망언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100만명이라는 숫자 자체가 바로 왜곡된 것이다. 합방 직전에 실시된 1910년 8월 4일의 경무총감부 공식조사에서 일진회 회원 수는 약 9만명이었다.
100만이라는 숫자는 1906년 11월에 일진회 자체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보낸 서한 속에 썼던 숫자다. 친일파들이 일제에 잘 보이기 위해 부풀려놓은 숫자인데도 니시오는 일부러 자료검증을 하지 않은 채 망언에 이용했다. 당시 일진회 주간이었던 이용구(李容九)는 1907년 소네 부통감에게 보낸 서한 속에 ‘(합방 논의를) 아는 사람은 회원 중에도 극히 드물다’고 썼다. 즉 한일합방은 결코 한국인의 총의도 아니고, 한민족 다수가 찬성한 일도 아니었음이 진실이다.
이처럼 일본의 우파 지식인들은 검증되지도 않고 왜곡된 역사자료를 공식자료처럼 내세워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고 당당하게 발표하고 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