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다른 두개의 해외 이주 현상
실제로 3·11 이후 자신의 거처를 해외로 옮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예를 들면
광학렌즈로 유명한 호야의 최고경영자(CEO) 스즈키 히로시는 올해 초 싱가포르로 이주할 뜻을 밝혔다.
이사회가 열릴 때만 일본에 귀국한다고 한다.
출판 및 통신교육 사업으로 유명한 베네세홀딩스의 회장은 뉴질랜드로,
세제 및 목욕 관련 제품으로 유명한 선스타의 회장은 스위스로,
그리고 한국에서도 유명한 유니클로의 회장은 싱가포르로 거처를 옮겼다.
유명 뮤지션 호테이 도모야스와 가수 겸 배우 이마이 미키 부부는 올 8월에 영국 런던으로 거처를 옮겼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이다. 물론 해외 이전에는 어학능력과 경제력이 필수적이니 최근 나타나는 해외 이주는 일부 계층에 한정된 현상이다. 하지만 <일본을 탈출하는 책>을 쓴 작가 야스다 오사마의 말처럼 “‘해외 탈출’을 하나의 선택지로 생각”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일본인의 해외 이주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외 이주가 삶의 선택지 중 하나가 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거품 경기로 일본 전체가 들썩이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 무렵까지 일본 사람들은 엔고와 호경기를 배경으로 해외에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꿈꾸며 오스트레일리아의 골드코스트나 스페인의 코스타 델 솔로 몰려들었다. 그래서 일본 통산성은 퇴직자들을 위한 마을을 만들겠다며 ‘실버 컬럼비아 계획 92’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력을 배경으로 또 하나의 일본을 해외에 마련하려 한다는 안팎의 비난에 직면해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한동안 잠잠하던 해외 이주가 다시 삶의 선택지 중 하나로 나타난 것은 2000년대 이후다. 이때는 1990년대와 상황이 다르다. 일본은 계속되는 불황에 허덕이고 있었고 199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개혁 등과 맞물려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실업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연금 수급이 가능한 연령까지 저비용으로 삶을 ‘연명’할 수 있는 물가가 싼 나라들이 각광을 받았다. 계속되는 불황에 세계 최대의 재정 적자, 심해지는 양극화. 이런 흐름에 박차를 가한 것이 2011년의 3·11이었다. 방사능 유출에 대한 공포가 기존의 절망감에 더해졌다. 게다가 2011년에는 31년 만에 무역적자에 빠졌다. 무역대국, 무역입국이라는 전통적인 일본의 이미지가 무색하게 되었다.
2011년 10월1일 현재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은 118만2557명이다. 2010년에 비해 3.43% 증가했다. 2009년과 2010년의 전년 대비 증가율이 각각 1.33%와 1.02%였던 점을 고려하면 대폭 늘어난 셈이다. 영주권을 가지고 있거나 3개월 이상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거주국 국적을 취득하거나 단기 여행을 하는 사람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일본 전체 인구의 1%에도 못 미친다. 또 일본 거주 외국인 약 200만 명의 50% 정도다.
열쇠는 일본을 바꿀 수 있느냐
나가는 사람보다 들어오는 사람이 여전히 많으니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해외 이주 현상을 두고 ‘국가의 위기’라고 떠들어댈 필요는 없다. 더구나 지진으로 일본 땅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는 <일본 침몰>이나 베트남에서 나타난 보트피플처럼 국가 자체가 붕괴 상태에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엔화와 일본 여권의 힘을 빌려 해외로 거처를 옮기는 정도이니 이를 두고 ‘일본 탈출’이라거나 ‘일본을 버렸다’는 식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해외 이주가 과거에 비해 하나의 선택지가 돼가고 있고, 이런 현상이 경제 불황과 원전 사고 때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한마디로 일본은 일본인들이 보기에 더 이상 매력적인 거주처가 아니게 되었다. 실제로 최근 일본의 서점에 넘쳐나는 <일본 탈출> <일본을 탈출하는 책> <증세 일본에서 탈출하는 방법> <일본 탈출처 넘버원 말레이시아> 같은 책들은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사회의 불안을 여실히 보여준다. 야마모토 다로의 말처럼 열쇠는 일본을 바꿀 수 있느냐에 있다. 하지만 지금 보기에 정치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작가 가야마 리카가 과거에 말한 대로 “어디를 봐도 우경화” 일색이니 누가 정권을 잡아도 ‘그 나물에 그 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