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경차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현재 일본의 경차 점유율은 40%에 육박해 이같은 추세라면 머지않아 인구의 절반이 경차를 몰게 될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한때 13.4%(2014년)까지 늘어났던 경차 점유율이 8%대에 머물고 있는 현재의 한국 상황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일본 자동차검사등록정보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1989년 사상 처음으로 등록대수 1,000만대를 기록하며 전체 자동차 등록대수의 26.1%를 차지한 경차는 2005년에 2,000만대, 그리고 올해 들어서는 3,000만대로 등록대수 비중이 39.9%로 확대됐다. 일본 국민이 모는 자동차 10대 중 4대는 경차라는 이야기다.
같은 기간 일반 승용차는 2000년 5,000만대 수준을 정점으로 계속적으로 쪼그라들어 현재는 4,700만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기간 일본 국민의 소득은 감소했고,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노동자의 40%에 육박했으며, 일본 국민들의 자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 가격도 적게는 반토막, 지역에 따라서는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불황형 저가 매장인 100엔 숍이 등장해 큰 인기를 끈 것도, 경차의 판매대수가 급격히 늘기 시작한 것도 모두 장기 불황으로 인한 일본 국민들의 구매여력 감소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1989년 1,000만대의 등록대수를 기록한 경차는 불과 15년 여만에 1,000만대에서 2,000만대로 두배 늘었다. 이는 경차가 가진 경제성에 더해 일본 경제의 불황에 기인한 바가 크다. "버블의 붕괴", "잃어버린 20년"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본의 경제는 1990년대 중반을 정점으로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해 30여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도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실질적인 구매여력 감소는 물론이고, 일본의 소비행태 변화도 일본 국민들의 경차 선호현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장기적인 불황은
노후에 대한 불안을 야기시켜 절약지향적인 소비행태를 띄게 만든다. 특히 "유토리 세대(1987년~2004년 출생자)"의 절약지향적
소비는 유별나다.
이들 유토리세대는 장기불황하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셈인데, 특이한 점은 수입이 있어도 소비 대신 저축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이들세대는 자동차나 해외여행, 명품은 물론 옷, 휴대폰 등 생활필수품에 대해서 조차 무관심할 정도로 지나치게 절제된 소비행태를 보이고 있다. 현재 30대 미만의 이들 세대는 버블경제나 인플레이션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이들이 고교나 대학시절에 마주한 거리에선 일명 "100엔숍"이라 불리는 불황형 저가 매장이 즐비하고, "무한리필"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진 선술집들이 인기몰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광경이었다.
소득 감소, 소비행태 변화와 더불어 일본에서 경차가 인기가 넘쳐나는 이유는 인구구조의 변화, 즉 고령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의 고령화는 EU의 2배, 미국에 비하면 3배의 스피드로 진행돼 2011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총인구의 14% 이상인 고령화사회를 거친 후, 1947년에서 1949년사이에 태어난 제1차 베이비 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가 2012년에 65세가 되기 시작하면서 고령화율은 급상승해 고령화사회 진입 불과 4년 만에 노인 비중이 20%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현재는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8%를 넘겨 일본 국민의 3.5명 중 1명은 노인인 상태다.
일본자동차공업회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경차 운전자의 비율은 34%에 달해 10년 조사와 비교해 1.6배나
증가했다. 이 비율은 해를 거듭할 수록 더욱 가파르게 늘어날 수 밖다. 당연한 결과 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차폭 감각이 둔해지는 등
운전감각이 떨어져 작고 아담한 경차를 선호하게 되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고령 경차운전자의 무려 95%가 교체시의 자동차로
경차를 택했다는 통계자료도 이를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