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국가가 과거 친족집단이 하던 역할을 대신 떠맡게 되었다. 전통보다는 개인의 동의 여부가 규범의 기초가 되었다. 자식의 성취가 아니라 자신의 성취가 인생의 성패를 결정짓게 되었다. 그 와중에 인구가 줄어도 세대 수는 꾸준히 늘어난다. 1인 가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노후를 자식이 아니라 개인의 저축이나 사회보장제도가 책임지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 최대의 저주는 자식이 없을 것이라는 예언이 아니라, 도저히 감당 못 할 자식을 많이 두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이제 아이를 낳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출생주의(anti-natalism)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다. 현대의 반출생주의 이론가 데이비드 베너타의 저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가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 데이비드 베너타는 태어나지 않았다면 입지 않아도 되었을 심각한 피해를 태어났기에 입는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렇게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철학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려 든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출산을 거부하는 이들이 모두 반출생주의자는 아니겠지만, 출산 거부는 점점 더 의식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이 되어 간다. 삶의 근본적인 부조리함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선택일 수도 있고,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는 선언일 수도 있고, 열악한 삶의 조건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배려일 수도 있고, 자기 인생을 더 자유롭게 누려보겠다는 판단일 수도 있고, 불공정한 사회에서 육아를 하지 않겠다는 거부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라면 인구학자 폴 몰런드가 말했듯이, 소수의 자식에 자원을 집중 투자하여 사회적 경쟁에 대처하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 각자의 구체적인 동기가 무엇이든, 인구 감소의 상당 부분은 나름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의 의식적 선택의 결과다.
더 엄혹한 시절에도 인구는 이처럼 빠르게 줄지 않았는데, 왜 하필 이 시대에 이토록 빨리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가? 이제 하나의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인간이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인구가 줄고 있다. 국가의 관점에서 인구 감소는 문제일지 몰라도, 재생산을 거부하는 개개인에게 인구의 감소는 문제라기보다는 나름대로 문제에 대처한 결과이다.
사람에 따라서, 출산 거부는 삶의 난관에 대한 하나의 주체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그러한 각성에 이른 인간은 1억을 빌려준다고 해서 낳지 않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이를 갑자기 낳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985602
나의 경우 반출생 주의자에 가까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