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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에 대한 답변.



한국은 중화권의 중심지역과 아주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서도 중화권에 편입되지 않은 예외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런 이유는 지정학적으로 방어하기 쉬운 위치에 있으면서 동시에 인구 밀도 또한 높았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개마고원이라 부르는 백두산 폭발로 인해 형성된 4만km2 크기의 고원이 있다. 얼마나 크냐면 지형 형성의 역사가 짧은 일본 열도 특성상 산이 완만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 내 고원들 보다 압도적으로 크기가 크다. 이런 고원이 한반도 방향으로는 경사가 15도 밖에 지지 않지만 중국 방향으로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급경사를 지닌 산맥을 형성한다. 거기다 백두산에서 흐른 물이 여기를 지나 거대한 압록강을 형성하며 군대가 건너는 것을 가로 막는다. 이것은 겨울 이외의 시기에는 공격 루트가 얕은 물가로 정해질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이것에 제대로 당한 사례가 요나라다. 고려는 요나라와 협상하여 압록강에 접한 강동 6주라는 지역을 얻어냈고 이곳에 6개의 요새를 세운다. 뒤늦게 실수 했음을 알게된 요나라는 겨울에 압록강을 건너거나 다리를 만드는 등 8차례 공격을 했지만 1곳도 빼앗지 못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선택한 방법이 고려군의 주력을 속이고 정예 기마부대 10만을 수도인 개경만을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돌진시키는 도박이었다. 모든 요새를 회피하며 개경에 도달하긴 했지만 개경의 방어가 단단하여 결과적으로 이 시도는 실패한다.
그리고 급히 후퇴하는 길에 고려군과 교전해서 전멸해버리는데 한국에서는 龜州大捷이라고 부른다.

다만 한반도 국가들 또한 지리적인 이유 때문에 만주로 팽창하기 매우 힘들었는데 이는 한족 국가가 끝내 만주 지역을 점령하는 대신 유목민들의 땅으로 남긴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지금은 비료를 사용해 농업이 가능하지만 전 근대만 하더라도 만주는 농업이 힘든 척박한 땅이었다.
이 말은 제대로 된 도시가 형성되기 힘들다는 뜻이고 근방에 도시가 없다는 말은 보급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마차로 보급로를 유지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유럽 국가 기준으로 지도 상으로 가까운 거리를 마차를 이용해 육상으로 보급한다 해도 한번 보급에 일주일 치 밖에 옮기지 못한다. 괜히 로마나, 나폴레옹이 현지에서 징발해서 보급을 유지한게 아니다.
전국시대 기준 짐말은 112kg 운반시 1일 11kg 소비. 사람은 37kg을 운반하면 1일 1kg 소비
구보타 마사시 - 일본의 군사 혁명
병사 1인당 보급 담당 2명이 필요하니 대략 계산해도 10일분 옮기는 것도 힘들다.

실제로 고려의 1차 요동 점령 당시 보급 + 왜구 문제로 후퇴했고 사르후 전투 때는 명나라, 조선 둘다 보급 문제를 겪는다.
히데요시 침공 당시에도 명나라 구원군이 조선에 도착했을 때 모든 식량을 소진한 상태였다.
고구려 또한 여진족과 더부살이를 하며 유목민이 자신들의 영토에 살아가는 것을 허용했다.
이 때문에 중화권 국가는 현재의 베이징이 위치한 연운 16주와 내몽골 고원 사이에 위치한 산해관을 자신들의 목숨 줄로 보았다.
이곳이 유목제국에 의해 뚫리면 그 뒤는 평야만이 존재하고 기마병으로 약탈을 하며 전진해도 막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