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명으로 쓴 일본 기행문 "해동제국기"
1443년(세종 25) 신숙주(1417~1475)는 세종의 명을 받들어 일본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병마에 시달리다가 회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가족들도 긴 여행을 우려했으나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그의 나이 27세 때였다.
당시 그의 직책은 오늘날 기록관에 해당하는 서장관으로서 통신정사, 부사에 이어 서열 3위에 해당하였다. 서장관은 외교뿐만 아니라 문장에 특히 뛰어난 사람이 임명되는 직책으로 세종은 집현전 학자로 있던 신숙주에게 큰 믿음을 보였다.
신숙주 일행은 7개월 간이라는 당시로서는 짧은 기간 동안에 외교적 목적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특히 분국 대마도주와 체결한 계해약조는 당시 외교 현안이었던 세견선(일본이 해마다 보내는 배)과 세사미두(해마다 바치는 쌀)의 문제를 각각 50척, 200석으로 해결한 것이었다.
그가 일본에 도착했을 때 그의 명성을 듣고 온 일본인들에게 즉석에서 시를 써 주어 그들을 감탄하게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당시 학문에 뛰어났던 그의 일행은 일본인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15세기 일본의 풍속"해동제국기"의 "일본국기" 중 "국속(國俗)" 항목은 일본에서도 자료가 거의 없는 당시의 일본 풍속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나라의 풍속은 일왕의 아들은 그 친족과 혼인하고, 국왕의 아들은 여러 대신과 혼인한다. …무기는 창과 칼 쓰기를 좋아한다. … 음식할 적엔 칠기(漆器)를 사용하며 높은 어른에게는 토기(土器)를 사용한다. …젓가락만 있고 숟가락은 없다. 남자는 머리털을 짤막하게 자르고 묶으며, 신발은 거의 신지 않으며 사람마다 단검(短劍)등을 차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부인은 눈썹을 뽑고 이마에 눈썹을 그렸으며, 등에 머리털을 드리우고 다리로써 이어 그 길이가 땅에까지 닿았다. 남녀가 얼굴을 꾸미는 자는 모두 그 이빨을 검게 물들였다. …"("해동제국기", "국속")
이 글에서 15세기 당시 일본의 풍속이 오늘날과도 거의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일본의 사무라이(ssaul a bi싸울아비) 전통, 젓가락 문화, 차를 즐기는 풍속 등이 이책 곳곳에 나타나 있어 일본 전통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