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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과거시험에 ‘日 독도 야욕 대책’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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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거시험에 독도와 울릉도를 둘러싼 일본의 영유권 야욕을 다룬 문제가 출제됐던 것을 기록한 사료(사진)가 발견돼 눈길을 끌고 있다.

대구지방변호사회 독도특별위원회는 14일 조선 숙종(1661~1720)이 과거시험에 ‘울릉도 쟁계(爭界)’문제를 출제한 사료를 공개했다. 이 사료는 당시 경북 의성 출신으로 과거시험에 응시했던 선비 신덕함(1656~1730)의 문집에 포함된 것으로, 영남지역 선열들의 삶을 재조명하기 위해 2007년 설립된 사단법인 국학연구소 대구·경북지부가 소장하고 있다.

대구변호사회에 따르면 이 사료는 1693년에 일어난 이른바 ‘안용복 사건(울릉도 쟁계)’이 논란이 되자 숙종이 과거시험 응시자들의 대책(對策)을 묻는 내용의 시험문제와 답안 등을 담고 있다. 시험문제는 울릉도 쟁계로 인한 대일(對日) 대처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숙종이 조정 대신들의 의견을 제시해주고 ‘울릉도가 멀리 동해(東海)에 있는데~ 변방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안정시킬 방도를 강구하여 각자 자세히 대책에 나타내도록 하라’는 것으로 1장(A4 용지 크기) 반의 분량이다.

당시 시험문제에 제시된 조정 대신들의 견해는 두가지였다. 첫째는 ‘강토는 남에게 줄 수 없는 것인데 한번 그들(일본)의 소유가 되면 동쪽 경계를 보호할 수가 없다. 그러니 변방의 장수를 가려보내 우선 점거해 지키는 것이 낫다’였다. 또 한가지는 ‘바다밖 조그마한 섬은 본래 빈 땅인데 일본과의 100년의 인호(좋은 관계)를 잃어선 안되니 그들의 왕래를 내버려두고 (북쪽)변방의 방비를 지키는 것이 낫다’였다. 시험문제에는 이 같은 의견제시와 함께 ‘이 두가지 중 어느것이 나은지 아니면 (더 좋은)양책이 있으면 제시하라’는 내용이 첨부돼 있었다.

이에 신덕함이 12장 반에 걸쳐 답을 한 것으로 돼 있다. 신덕함은 문집에서 이에 대한 답으로 “국가를 잘 다스리면 밖에서의 우환도 없어지기 때문에 임금은 내수에 힘써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적어냈다. 신덕함은 “그러나 과거에 급제하지는 못했다”고 문집에서 밝히고 있다.

울릉도 쟁계는 1693년 안용복 등이 울릉도 부근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일본 어부들에게 납치되면서 한·일간에 벌어졌던 어업권과 영유권 분쟁이다.

안용복은 이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하고 이를 인정하는 일본 에도막부(江戶幕府)의 서계(書契·조선시대 외교문서)를 받아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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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過去試験に ‘日 独島野慾対策’ 出た

朝鮮時代過去試験に独島と鬱陵島を取り囲んだ日本の領有権野慾を扱った問題が出題されたことを記録した史料(写真)が発見されて人目を引いている.

大邱地方弁護社会独島特別委員会は 14日朝鮮肅宗(1661‾1720)が過去試験に ‘鬱陵島ゼングギェ(争界)’問題を出題した史料を公開した. この史料は当時慶北擬声出身で過去試験に見つめた士信徳する(1656‾1730)の文集に含まれたことで, 嶺南地域先烈たちの生を再照明するために 2007年設立された社団法人国学研究所大邱・慶北支部が所蔵している.

大邱弁護社会によればこの史料は 1693年に起きたいわゆる ‘安竜福事件(鬱陵島ゼングギェ)’が論難になると肅宗が過去試験受験者たちの対策(対策)を問う内容の試験問題と答案などを盛っている. 試験問題は鬱陵島ゼングギェによる対日(対日) 対処方案を模索するために肅宗が調整大臣たちの意見を提示してくれて ‘鬱陵島が遠く東海(東海)にあるのに‾ 辺方を楽にして国を安定させる方途を講じて各各詳らかに対策に現わすようにしなさい’と言うので 1枚(A4 用紙大きさ) 半意分量だ.

当時試験問題に提示された調整大臣たちの見解は二つだった. 第一は ‘領土は他人に与えることができないことなのに一度彼ら(日本)の所有になれば東境界を保護することができない. だから辺方の長寿をがリョボネまず占拠して守った方が良い’だった. また一つは ‘バダバックやや小い島は本来空き地なのに日本との 100年の隣好(良い関係)を失ってはいけないから彼らの往来をほったらかしておいて (北)辺方の防備を守った方が良い’だった. 試験問題にはこのような意見提示とともに ‘この二つの中オヌゴッが優れてからそれとも (もっと良い)良策があれば提示しなさい’と言う内容が添付されていた.

ここに信徳することが 12枚半分にわたって答をしたことになっている. 信徳することは文集でこれに対する答で “国家をよく治めれば外での憂患も消えるから賃金は内需に力をつく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う内容の文を書き出した. 信徳することは “しかし過去に合格す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と文集で明らかにしている.

鬱陵島ゼングギェは 1693年安竜福などが鬱陵島近所で漁夫をした中日本漁夫たちに拉致されながら韓・日間に起った漁業権と領有権紛争だ.

安竜福は以後鬱陵島と独島が朝鮮の領土なのを主張してこれを認める日本江戸幕府(江戸幕府)の西界(書契・朝鮮時代外交文書)を受けて帰国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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