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まじめな広開土大王碑石解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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広開土大王碑石で解釈に論難のある部分がある.


日本人は下の説明をじっくりと読んで論理的に判断して見るように願う.



1) 391年, 百済と新羅は元々高句麗の 属民だったが, 日本軍が百済と新羅を 破と 臣民で作った. (日本人の主張による解釈)

↓

2) 396年, 広開土大王が百済の首都を落ちると百済王が降伏して高句麗の臣下になることを誓った.

↓

3) 399年, 百済が誓いを破って日本と 和通と, 日本が高句麗の臣下である新羅を攻撃して日本の 民で作ろうとするから新羅王が高句麗に救援を要請した.

↓

4) 400年, 広開土大王が新羅に行って日本軍を撃破して 任那加羅まで占領して新羅人に 任那加羅を守るように言い付けた.



碑石で南側の内容はこんな脈絡なのに,


1)で日本人の主張に付くようになったら, 他の歴史書と行き違うようになるだけでなく, 碑石の内にある内容とも相当な衝突を起こすようになる.


A. 1)で日本人の主張によれば, 元々高句麗の属国だった百済が日本軍の攻撃で奪われるようになったということだが,

それなら高句麗は 2)で日本軍を退けて百済を収復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ではないか?

しかしどうして高句麗は 2)で日本軍ではない百済に対する攻撃を始めているのか?

そして百済はどうして自発的に高句麗に対立しているのか?

日本人の主張によれば百済を 破したことは日本なのに?


B. 1)で日本人の主張に付くようになったら, 百済が自発的に高句麗と戦っていることも変だが,

2)の記録を見れば百済軍は 城 の外に出て高句麗軍を正面で相対するまでする.

日本人の主張によれば, 百済軍はわずか 5年前に 1)で日本軍にも敗れて 破 になったはずだが,

2)で百済はどこで高句麗軍に対立する軍隊と意志と自信感ができたことか?


C. 3)を見れば日本は 399年に新羅を攻撃して新羅を日本の 民ウでマンドリョで言っていたと言う.

ところで 1)で日本人の主張に付くようになったら, 8年前, 391年に新羅はもう日本の攻撃で日本の 民になったと しなかったのか?



以上日本人の主張による解釈が碑石の他の内容と衝突しながら発生する疑問だ.


上の疑問を通じて, 碑石の解釈に対する日本人の主張は論理的によほど行き違っているししまりがなくて, 恣意的という事実が分かる.


手前味の嘘でいっぱいになった日本書紀でも百済と日本ははじめから協力関係であったし, 日本が百済を攻撃したという記録は全然存在しない. 日本が百済を攻撃したらそんな協力関係は当然はじめからなかったはずだ.


そして 1)の文章を含んで碑石には毀損された字が相当だ. 1)の文章の原文には新羅という単語も実際では書かれていない.


日本人の主張は上の論理によって説得力がよほど落ちて, 他の解釈代案を捜すことが適当だ.




1)の内容が日本が百済を攻撃したのではなくはじめから日本と百済が 和通真書高句麗に対抗して新羅を攻撃したという内容だと言ったら,


他の歴史書の記録, 歴史的脈絡, そして碑石の他の部分とも一致が可能になる.




論理的に理解することができる日本人だけコメント付けてください.

原文を見る

성실한 광개토대왕 비석 해석

광개토대왕 비석에서 해석에 논란이 있는 부분이 있다.


일본인은 아래의 설명을 차분히 읽고 논리적으로 판단하여 보기를 바란다.



1) 391년, 백제와 신라는 원래 고구려의 屬民이었으나, 일본군이 백제와 신라를 破하고 臣民으로 만들었다. (일본인의 주장에 따른 해석)

↓

2) 396년, 광개토대왕이 백제의 수도를 함락하자 백제왕이 항복하고 고구려의 신하가 될 것을 맹세했다.

↓

3) 399년, 백제가 맹세를 어기고 일본과 和通하고, 일본이 고구려의 신하인 신라를 공격해서 일본의 民으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신라왕이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했다.

↓

4) 400년, 광개토대왕이 신라로 가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任那加羅까지 점령해서 신라인에게 任那加羅를 지키도록 명령했다.



비석에서 남쪽의 내용은 이런 맥락인데,


1)에서 일본인의 주장을 따르게 된다면, 다른 역사서와 어긋나게 될 뿐만 아니라, 비석 안에 있는 내용과도 상당한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A. 1)에서 일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원래 고구려의 속국이었던 백제가 일본군의 공격으로 빼앗기게 되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고구려는 2)에서 일본군을 물리치고 백제를 수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어째서 고구려는 2)에서 일본군이 아닌 백제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백제는 어째서 자발적으로 고구려에 맞서고 있는 것인가?

일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백제를 破한 것은 일본인데?


B. 1)에서 일본인의 주장을 따르게 된다면, 백제가 자발적으로 고구려와 싸우고 있는 것도 이상한데,

2)의 기록을 보면 백제軍은 城 밖으로 나와 고구려軍을 정면에서 상대하기 까지 한다. 

일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백제군은 불과 5년 전에 1)에서 일본군에게도 패해서 破 됐을 것인데,

2)에서 백제는 어디에서 고구려軍에 맞설 군대와 의지와 자신감이 생겨난 것인가? 


C. 3)을 보면 일본은 399년에 신라를 공격해서 신라를 일본의 民으로 만드려고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에서 일본인의 주장을 따르게 된다면, 8년 전, 391년에 신라는 이미 일본의 공격으로 일본의 民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상 일본인의 주장에 따른 해석이 비석의 다른 내용과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의문이다.


위 의문을 통해, 비석의 해석에 대한 일본인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상당히 어긋나고 있고 엉성하며, 자의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화자찬의 거짓말로 가득찬 일본서기에서도 백제와 일본은 처음부터 협력 관계 였으며, 일본이 백제를 공격했다는 기록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이 백제를 공격했다면 그런 협력 관계는 당연히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1)의 문장을 포함해 비석에는 훼손된 글자가 상당하다. 1)의 문장의 원문에는 신라라는 단어도 실제로는 적혀있지 않다.


일본인의 주장은 위의 논리에 따라 설득력이 상당히 떨어지며, 다른 해석 대안을 찾는 것이 합당하다.




1)의 내용이 일본이 백제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일본과 백제가 和通해서 고구려에 대항해 신라를 공격했다는 내용이라고 한다면,


다른 역사서의 기록, 역사적 맥락, 그리고 비석의 다른 부분과도 일치가 가능하게 된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본인만 코멘트 붙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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