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私は北京を見るまでは、ソウルを地球上でもっとも不潔な都市、また紹興〔中国浙江省北部の県〕の悪臭に出会うまでは、もっとも悪臭のひどい都市と考えていた!
大都市、首都にしてはそのみすぼらしさは名状出来ない程ひどいものである。
礼儀作法のために、2階家の建造が禁じられている。
その結果、25万人と見積もられている人々が〈地べた〉、主として迷路のような路地で暮らしている。
その路地の多くは、荷を積んだ二頭の雄牛が通れないほど狭い。実にやっとひとりが、荷を積んだ雄牛一頭を通させる広さしか無い。
さらに立ち並んでいるひどくむさくるしい家々や、その家が出す固体や液状の廃物を受け入れる緑色のぬるぬるしたどぶと、そしてその汚れた臭い緑によって一層狭められている。
そのどぶは半裸の子供たちやどろどろしたへどろのなかを転げ回るか、日なたで目をぱちくりさせている汚物で汚れた大きな、毛の抜けたかすみ目の犬が大好きでよく行く所である。
そこにはまた〈小間物〉やアニリン染料でけばけばしく色付けされたキャンディー(飴菓子)の行商人もいる。
その行商人は、どぶに厚板を2、3枚渡して店を常設している。その品物は、多分1ドルかそこらの値打ちしかない」(第2章、首都の第一印象)
「固体や液状の廃物」というのは、屎尿(しにょう。糞尿)のことである。
「毛の抜けたかすみ目の犬」というのは、皮膚病で毛が抜けた犬のことであろう。
5、6年前に大ヒットしたTVドラマ『宮廷女官チャングムの誓い』で見たソウルのあのきれいな町並みは、実際には、あり得なかったのである。
それにしても、北京や紹興のほうが、ソウルよりもっと不潔だったというのには、驚いた(笑)。
「商店は、一般にみじめさを共有している」
同じ儒教の国でありながら、19世紀の首都ソウルは、日本の江戸幕府による統治時代の江戸や京都や大阪と比べても、雲泥の差と言っていい有様であった。
朱子学では、「士・農・工・商」の身分は厳しく定められていたためか、商業は卑しい職業ということなのだろう、商業の中心地ソウルの
「商業という観念は行商に限られている」(第4章、ソウルの風物)
という状態で、
「商店は、一般にみじめさを共有している。商店は沢山あるが、在庫品の値打ちは6ドル程である。・・・(中略)・・・商店は、注目に値する特徴を文字通り何一つ持っていない」(第2章、首都の第一印象)
とまで、バードは酷評している。
李氏朝鮮は、朱子学以外はまるで認めないという厳格主義で、「江戸しぐさ」で言うところの「尊異論」などではなかった
17~19世紀にかけて、一つ海を隔てただけの朝鮮と日本が、同じく中国の影響を受け続けて来た儒教の国でありながら、朝鮮は貧しいままで、日本は色々な意味で豊かな国になっていったというのは、すでに触れたように、李氏朝鮮が、「朱子学一尊主義」を貫いたことと、大いに関係がある。
李朝は、仏教を否定し、同じ儒教であるところの陽明学をも否定した。
我が国はと言えば、江戸幕府は、朱子学を国教としたが、陽明学や仏教や老荘思想や神道の存在を否定することは無かった。
むしろ、江戸幕府は、儒学を中心とした神・儒・仏「三教一致」の政策であった。
李氏朝鮮は、朱子学以外はまるで認めないという厳格主義で、「江戸しぐさ」で言うところの
「尊異論」
などではなかったがために、数百年もの長きにわたって社会が硬直化し、停滞してしまったのである。
その間、支配階級の貴族や両班(ヤンバン)にしてみれば、政争は別にして、先祖伝来の既得権益を侵される心配は毛頭なかった。
★『朝鮮紀行』
Korea and Her Neighbours)はイザベラ・バード (Isabella L. Bird) の朝鮮旅行記である。1894年(明治27年)から1897年(明治30年)にかけ、著者が4度にわたり末期の李氏朝鮮を訪れた旅行の記録で、当時の朝鮮の風俗、社会、政治情勢などを知ることのできる歴史的資料である。
朝鮮半万年の歴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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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반만년의 역사
「 나는 북경을 볼 때까지는, 서울을 지구상에서 가장 불결한 도시, 또 쇼코〔중국 절강성 북부의 현〕의 악취를 만날 때까지는, 가장 악취의 심한 도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도시, 수도으로서는 그 초라함은 상태를 말로 표현함 할 수 없을 수록 심한 것이다.
예의범절을 위해서, 2층가의 건조가 금지되고 있다.
그 결과, 25만명으로 추측해지고 있는 사람들이〈바닥〉, 주로 미로와 같은 골목에서 살고 있다.
그 골목의 상당수는, 짐을 쌓은 두마리의 숫소를 통과할 수 없을 정도 좁다.실로 겨우 혼자가, 짐을 쌓은 숫소 한필을 통하게 하는 넓이 밖에 없다.
한층 더 나란히 서 있는 몹시 지저분한 집들이나, 그 집이 내는 고체나 액상의 폐물을 받아 들이는 녹색의 미끈미끈 한 도랑과 그리고 그 더러워진 수상한 초록에 의해서 한층 좁힐 수 있고 있다.
그 도랑은 반나체의 아이들이나 질척질척 한 하수폐액 속을 굴러 도는지, 양달에서 눈을 끔뻑 시키고 있는 오물로 더러워진 큰, 털이 빠졌는지 먹눈의 개를 아주 좋아하고 자주 가는 곳이다.
거기에는 또〈방물〉이나 형 인 염료로 현란하게 물이 들 수 있는 된 캔디(엿과자)의 행상인도 있다.
그 행상인은, 도랑에 후판을 2, 3매 건네주어 전`X를 상설하고 있다.그 물건은, 아마 1 달러나 그 정도의 값 밖에 없다」( 제2장, 수도의 첫인상)
「고체나 액상의 폐물」이라고 하는 것은, 분뇨(분뇨.분뇨)이다.
「털이 빠졌는지 먹눈의 개」라고 하는 것은, 피부병으로 털이 빠진 개이자.
5, 6년전에 대히트 한 TV드라마 「궁정 궁녀 체금의 맹세」로 본 서울의 그 깨끗한 마치나미 봐는, 실제로는, 있어 유리한 샀던 것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북경이나 쇼코 쪽이, 서울 보다 더 불결했다고 말하는데는, 놀란 (웃음).
「상점은, 일반적으로 비참함을 공유하고 있다」
같은 유교의 나라면서, 19 세기의 수도 서울은, 일본의 에도 막부에 의한 통치 시대의 에도나 쿄토나 오사카와 비교해도, 운니지차라고 말해도 좋은 모양이었다.
주자학에서는, 「사·농·공·상」의 신분은 어렵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인가, 상업은 천한 직업이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 상업의 중심지 서울의
「상업이라고 하는 관념은 행상에 한정되어 있다」( 제4장, 서울의 풍물)
그렇다고 하는 상태로,
「상점은, 일반적으로 비참함을 공유하고 있다.상점은 많이 있지만, 재고품의 값은 6 달러정도이다.···(중략)···상점은, 주목할 만하는 특징을 문자 그대로 무엇하나 가지고 있지 않다」( 제2장, 수도의 첫인상)
(와)과까지, 버드는 혹평하고 있다.
이씨 조선은, 주자학 이외 빠지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 엄격 주의로, 「에도 행동」으로 말하는 곳(중)의 「존이론」등에서는 없었다
17~19 세기에 걸치고, 하나해를 멀리했을 뿐의 조선과 일본이, 같은 중국의 영향을 계속 받아 온 유교의 나라면서, 조선은 궁핍한 채로, 일본은 다양한 의미로 풍부한 나라가 되어 갔다는 것은, 벌써 접한 것처럼, 이씨 조선이, 「주자학일존주의」를 관철한 것과 많이 관계가 있다.
이조는, 불교를 부정해, 같은 유교인 곳(중)의 양명학도 부정했다.
우리 나라는이라고 말하면, 에도 막부는, 주자학을 국교로 했지만, 양명학이나 불교나 노장사상이나 신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에도 막부는, 유학을 중심으로 한 신·유·불 「세가지(유교, 불교, 신도) 가르
대도시, 수도으로서는 그 초라함은 상태를 말로 표현함 할 수 없을 수록 심한 것이다.
예의범절을 위해서, 2층가의 건조가 금지되고 있다.
그 결과, 25만명으로 추측해지고 있는 사람들이〈바닥〉, 주로 미로와 같은 골목에서 살고 있다.
그 골목의 상당수는, 짐을 쌓은 두마리의 숫소를 통과할 수 없을 정도 좁다.실로 겨우 혼자가, 짐을 쌓은 숫소 한필을 통하게 하는 넓이 밖에 없다.
한층 더 나란히 서 있는 몹시 지저분한 집들이나, 그 집이 내는 고체나 액상의 폐물을 받아 들이는 녹색의 미끈미끈 한 도랑과 그리고 그 더러워진 수상한 초록에 의해서 한층 좁힐 수 있고 있다.
그 도랑은 반나체의 아이들이나 질척질척 한 하수폐액 속을 굴러 도는지, 양달에서 눈을 끔뻑 시키고 있는 오물로 더러워진 큰, 털이 빠졌는지 먹눈의 개를 아주 좋아하고 자주 가는 곳이다.
거기에는 또〈방물〉이나 형 인 염료로 현란하게 물이 들 수 있는 된 캔디(엿과자)의 행상인도 있다.
그 행상인은, 도랑에 후판을 2, 3매 건네주어 전`X를 상설하고 있다.그 물건은, 아마 1 달러나 그 정도의 값 밖에 없다」( 제2장, 수도의 첫인상)
「고체나 액상의 폐물」이라고 하는 것은, 분뇨(분뇨.분뇨)이다.
「털이 빠졌는지 먹눈의 개」라고 하는 것은, 피부병으로 털이 빠진 개이자.
5, 6년전에 대히트 한 TV드라마 「궁정 궁녀 체금의 맹세」로 본 서울의 그 깨끗한 마치나미 봐는, 실제로는, 있어 유리한 샀던 것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북경이나 쇼코 쪽이, 서울 보다 더 불결했다고 말하는데는, 놀란 (웃음).
「상점은, 일반적으로 비참함을 공유하고 있다」
같은 유교의 나라면서, 19 세기의 수도 서울은, 일본의 에도 막부에 의한 통치 시대의 에도나 쿄토나 오사카와 비교해도, 운니지차라고 말해도 좋은 모양이었다.
주자학에서는, 「사·농·공·상」의 신분은 어렵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인가, 상업은 천한 직업이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 상업의 중심지 서울의
「상업이라고 하는 관념은 행상에 한정되어 있다」( 제4장, 서울의 풍물)
그렇다고 하는 상태로,
「상점은, 일반적으로 비참함을 공유하고 있다.상점은 많이 있지만, 재고품의 값은 6 달러정도이다.···(중략)···상점은, 주목할 만하는 특징을 문자 그대로 무엇하나 가지고 있지 않다」( 제2장, 수도의 첫인상)
(와)과까지, 버드는 혹평하고 있다.
이씨 조선은, 주자학 이외 빠지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 엄격 주의로, 「에도 행동」으로 말하는 곳(중)의 「존이론」등에서는 없었다
17~19 세기에 걸치고, 하나해를 멀리했을 뿐의 조선과 일본이, 같은 중국의 영향을 계속 받아 온 유교의 나라면서, 조선은 궁핍한 채로, 일본은 다양한 의미로 풍부한 나라가 되어 갔다는 것은, 벌써 접한 것처럼, 이씨 조선이, 「주자학일존주의」를 관철한 것과 많이 관계가 있다.
이조는, 불교를 부정해, 같은 유교인 곳(중)의 양명학도 부정했다.
우리 나라는이라고 말하면, 에도 막부는, 주자학을 국교로 했지만, 양명학이나 불교나 노장사상이나 신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에도 막부는, 유학을 중심으로 한 신·유·불 「세가지(유교, 불교, 신도) 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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