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유명한 왕벚나무는 제주도가 원산지로 6세기경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 벚꽃의 총본산으로 불리는 요시노산(吉野山)은 나라현에 위치해 있는데 이 지역은 지난 538년부터 백제 성왕에 의해 불교가 포교된 땅이다.
왕벚나무는 1901년 일본학자가 도쿄에서 발견해 국제 학계에 보고한뒤 원산지가 일본인것처럼 알려졌고 일본의 국화로 인식될만큼 일본에서 알려진 나무인데도,일본에선 그 자생지가 발견되지 않았고 일본 고대사에도 벚나무에 대한건 찾아볼수가 없다.
왕벚나무는 우리나라 제주도와 전라북도 대둔산에서만 자생하는 한국 특산종으로 1908년 프랑스 신부 타크(Taquet)가 한라산 북쪽 관음사숲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하면서 제주도가 왕벚나무의 자생지임이 알려지게 되었다.
왕벚나무에 대한 일본문헌을 살펴보면,1900년 일본 원예 잡지 45호 에 도쿄 우에노공원 왕벚나무 조사 결과가 실려 있다.
그 이듬해 1901년 마쓰무라松村박사가 도쿄 식물 잡지 15권에 왕벚나무에 대한 기록을 발표하면서,실질적인 식물학적 이름인 ‘Prunus yedoensis Matsum’이 탄생했다.
한국 제주도에서는 1908년 4월 14일 한라산 북측의 관음사 근처,해발 약 600미터 지점의 숲에서 타케(Emile Joseph Taquet) 신부가 세계 최초의 왕벚나무 표본(표본번호 4638번)을 채집했다.그후 1912년 독일 베를린 대학의 벚나무 분류 권위자인 쾨네(Koehne) 박사를 통해서 제주가 왕벚나무 자생지임이 최초로 알려졌다.그리고 고이즈미, 다케나카, 나카이, 마키노, 모리 등 많은 일본 식물학자들이 제주도를 방문해 조사하여 이를 지지했다.
후에 미국 하버드 대학 윌슨 박사가 일본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하자 산벚나무와 올벚나무의 교배에서 생긴다는 잡종설을 발표하여 일본학자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으나 1933년 4월 일본 교토 제국대학 고이즈미 겐이치 박사가 한라산 남쪽 숲 속에서 왕벚나무를 찾아내고 확인,발표해 오랫동안 학계에서 논쟁대상이 되었던 것을 해소시켰다.
1933년 일본의 저명한 식물학자 고이즈미 겐이치는 ‘일본 사쿠라의 한국 起源論’을 발표하기도 했다.
권위있는 벚꽃 전문학자인 다카기 기요코 교수도 한국에는 사쿠라가 매우 많다.
요시노 사쿠라의 원산지는 제주도(‘櫻’ 중앙공론社, 1992)라고 못박았다.
반면 우리 ‘삼국유사’에는 승려 충담의 앵통(櫻筒)기록(765년)이 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벚나무기록이다.
경술국치 이후 제주도에서 왕벚나무 자생지가 발견되고 많은 일본 학자들이 “제주도가 원산지”라고 인정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은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주장하며 한국도 어차피 일본의 영토라고 생각했기에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라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밝혔다.
하지만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면서 상황은 바뀌었고 땅에 떨어진 일본 국민들의 사기를 돋우고자 일본은 왕벚나무가 일본산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제주도 원산지설은 폐기되다시피 했다.
국립산림과학원 관계자는 일본인들이 그토록 좋아하던 왕벚나무가 한국의 꽃임을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라며 현재 일본의 젊은 학자들도 그런 학설에 빠져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왕벚나무를 제주산이라고 인정한 것은 1960년대 들어서고 1962년 박만규, 부종유 등 식물학자들에 의해 제주도의 왕벚나무 자생지가 발견된후 1965년엔 왕벚나무 자생지 2곳이 천연기념물로 등록되었다.
2001년에는 산림청 임업연구원 분자유전학연구실에서 한·일 왕벚나무를 대상으로 디옥시리보핵산(DNA)지문분석을 벌인 결과 한라산이 원산지인 사실을 규명해냈다.
(팔만대장경 중 상당수가 벚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예로부터 문서보관함 등으로 벚나무가 많이 애용되기도 했다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