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사를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일 매춘의 역사도 공부해요.
[1972년. 일본은 중국과 수교하며 대만과의 관계를 청산했다. 대만은 그동안 일본인들의 은밀한 매춘 여행지 노릇을 해왔던 곳. 지리적으로 가깝고 비용면에서도 별 부담이 없던 관광지 한 곳을 잃자 일본 여행사들은 그 대안으로 바로 한국을 점찍었다. 일본인들이 선망하는 "게이샤" 즉 기생을 한국관광 핵심 포인트로 잡아 선전을 시작했다. 5만 엔 정도를 들고 2박3일 한국여행에 나서는 일본 중년남자가 속속 모였다. 72년 한국을 찾은 일본 관광객의 80%는 아내나 가족동반이 아닌 나 홀로 중년남성들이었다.]
[일본의 한 주간지는 자국민 매춘관광 실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50명 단체관광객이 모두 한 명씩 아가씨를 동반하고 희희낙락하며 호텔 엘리베이터에 몰려드는 꼴은 러시아워의 전철 정거장을 연상케 한다." 이 잡지는 "관광객은 원하는 대로 몇 번이고 즐길 수 있다. 기생은 결코 거부하지 않는다."는 낯 뜨거운 코멘트까지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당시 미국의 시사 잡지 타임도 특집기사를 통해 "한국이 일본 호색한들의 도락장이 되었다."고 개탄할 지경이었다.]
[일본인들은 매너도 엉망이었다. 고궁 담벼락에 오줌을 누는 사람, 호텔 로비를 맨발로 다니거나 욕실 옷을 입은 채 거리로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구두를 벗어드는가 하면 모든 층 단추를 눌러 엘리베이터가 설 때마다 시시덕거리는 등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인간이 갖가지 추태를 부렸다. 어느 칼럼니스트는 일단의 일본관광객이 술이 취해 목청껏 일본 군가를 부르는 걸 듣고는 "이런 걸 방관하는 한국이란 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된 나라냐?"며 울분을 터트리기도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 정부는 손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방관하며 외화수입이 느는 것만 즐기고 있었다. 경제개발계획을 세우고 집행하는 정부에겐 당장 한 푼의 외화가 더 중요했다.
73년 여름 로이터통신은 "한국관광공사엔 안내양이 1천5백 명으로 등록돼 있지만 8천 명이 더 일본인 접대 업무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
[당시 한국에 상주하는 일본인 1천 명 중 독신자가 7백 명이고 그 중 5백 명이 현지처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경찰은 추산했다. 80년대 초에는 한국 상주 일본인은 약 3천 명이었고 그 중 가족을 동반한 경우는 2백40명에 불과했다. 79년 뉴욕타임스는 일본의 매춘관광이 동남아에서 주로 서울 타이페이 방콕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도하며 50만 명의 일본인이 서울을 찾는데 그 중 여성은 3만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원문을 읽으세요.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47&contents_id=3929&leafId=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