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보다 일본이 더 싫다"... 미얀마인의 속내
식민지 시절, 외세가 만든 화사한 유원지
▲ 깐도지 호수 정원 1년 내내 각종 꽃들이 만발하는 곳이다. ⓒ 전병호미얀마 사람들이 제일가고 싶어 하는 휴양지 중 한 곳이 삔우린(Pyin Oo Lwin)이다. 삔우린은 만달레이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60여 km 떨어져 있는 작은 휴양도시다. 이곳은 해발 1000여 m의 고원 도시로, 고온 다습한 미얀마 기후와 전혀 다르게 1년 내내 시원하고 맑은 공기로 쾌적하다.
미얀마 현지인들은 이곳을 "꽃의 도시"라는 의미로 빵묘도(Panmyodaw)라고 부른다. 1년 내내 각종 꽃과 과일, 향이 좋은 커피 등을 맛 볼 수 있다. 삔우린은 과거에 메묘(Maymyo)라고 불렸다. 영국군 장교인 메이(May) 대령이 살던 마을(묘myo)이라는 뜻이다. 이름 속에 들어 있듯 이곳은 영국신민지 시절 영국군의 휴양도시로 건설된 곳이다. 시내를 돌다 보면 아직도 영국풍의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미얀마의 식민지 역사
대부분 동남아시아 국가가 그렇듯 미얀마의 근대사에도 아픈 식민지 역사가 들어 있다. 1855년 미얀마의 마지막 꼰바웅 왕조는 만달레이 왕궁을 에워싼 영국군에 항복하고 마지막 왕 띠보는 인질이 되어 인도로 유배된다. 만달레이 시내 한복판에는 지금도 사방이 거대한 해자로 둘러싸인, 사라진 마지막 왕조의 한이 서린 만달레이 왕궁이 자리 잡고 있다.
미얀마 근대사는 이렇게 영국 신민의 역사로 시작되었다. 마지막 왕조를 무너뜨린 영국은 미얀마를 인도의 한 주로 편입 시키고 수많은 인도인과 중국인들 대거 유입 시켰다. 그리고 다수의 버마족을 견제하기 위해 친족·까친족 등에게 힘을 실어 준다.

식민의 역사도 있지만 미얀마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독립운동의 역사도 있다. 1930년대 들어 미얀마의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선 사람이 바로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아버지인 아웅 산 장군이었다. 아웅 산 장군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하고자 일본과 손잡고 영국군과 싸워 물리쳤다.
하지만 일본은 제국주의 속내를 드러내며 미얀마 곳곳을 폭격하고 미얀마를 점령한다. 또 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 기간은 영국보다 짧은 기간이었으나 훨씬 악랄하게 핍박해, 미얀마인들에게 분노와 치욕을 느끼게 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으로 죽였고 많은 미얀마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했다.
영화로도 제작된 "콰이강의 다리"는 일제 식민지 수탈의 잔혹성을 대변하는 현장이다. 수많은 미얀마 사람들과 영국군, 네덜란드 포로들이 동원되어 가혹한 노동 끝에 사망했다. 현지 가이드 말에 의하면 미얀마 사람들은 지금도 영국인보다 일본인에게 더 호의적이지 않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