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KJCLUB 한일 문화교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강의 기적은 일본도 박정희도 관계없다! 일본교수 연구발표

조회수 : 355
JA 255 曰本消滅 2,502,437

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한국 경제의 도약, 이른바 "한강의 기적"은 독재 정치가 남긴 많은 폐단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금까지도 추앙받게 만들고 있다. 비록 정치적 측면에서는 많은 과오를 남겼으나 경제적 측면에서는 대한민국을 빠르게 일으켜 세웠다는 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통상적인 평가다.


그러나 당시의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은 박정희 정부의 정책이 아닌 미국의 지원 덕택이었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됐다. 박근호 일본 시즈오카대 교수가 자신의 신간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에서 주장한 것이다.


박근호 교수는 60년대 후반에 시작된 고도성장이 박정희 정부의 정책이 밀던 것이 아닌 산업 분야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과 경제성장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한다:



“경제개발계획의 목표와 실적 간에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책방침과도 엇갈리는 경우가 허다하게 나타나는 등 경제정책과의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수출 전략상품이었던 피복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반면, 전략상품이 아니었던 내의류는 피복류의 2배에 가까운 수출실적을 달성하는 등 정부의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가 나왔어요. 제품의 국제경쟁력이 좋았던 게 아니라 미국이 물건을 사줬기 때문입니다.” (경향신문 3월 29일)

박 교수는 당시 수출촉진 정책을 펴고 있던 무수한 아시아 국가들 중 유독 한국만이 성과를 거둘 수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정책 덕택이었다고 주장한다. 베트남전 이후 한국을 반공의 보루로 삼아 미국이 적극적으로 한국에 투자한 결과라는 게다.


그러나 기존의 자료 중에는 이러한 관점과 상반되는 시각의 것도 존재한다. 1976년 코리아게이트 스캔들로 인해 미국 의회의 소위원회에서 1978년 작성한 이른바 "프레이저 보고서"의 내용이 그렇다.


프레이저 보고서는 경제관계를 포함한 한미관계에 대해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보고서는 원조, 자문 등을 제공한 것 외에 한국의 경제개발에서 미국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70년대부터의 경제개발 과정에서는 미국의 자문도 없었으며 원조도 미미했다고 한다.


박정희 시절의 경제성장을 단 하나의 요인만이 견인했다고 주장하기란 무리다. 하지만 박근호 교수가 제기하는 관점이 이에 대한 논쟁을 보다 풍요롭게 할 수는 있을 듯하다



한강의 기적은 친일파 박정희도 일본도 무관하다는 것이

미국 프레지어보고서와 일본대학교수의 연구 결론w



^^



http://www.huffingtonpost.kr/2017/03/29/story_n_15679470.html

원문보기

漢江の奇蹟は日本も朴正煕も関係ない! 日本教授研究発表

60年代後半から始まった韓国経済の跳躍, いわゆる "漢江の奇跡"は独裁政治が残した多くの弊端にもかかわらず朴正煕前大統領を今までも仰ぎ敬うようにしている. たとえ政治的側面では多くの過誤を残したが経済的側面では大韓民国を早く起こして立てたということが朴正煕前大統領に対する通常的な評価だ.


しかし当時の韓国経済の高度成長は朴正煕政府の政策ではないアメリカの支援徳沢だったという主張が最近申し立てられた. 迫近号日本静岡台教授が自分の新刊 "朴正煕経済神話解剖"で主張したのだ.


迫近号教授は 60年代後半に始まった高度成長が朴正煕政府の政策が押したのではない産業分野で始まったという点を指摘しながら朴正煕政府の経済政策課経済成長の結果の間に因果関係が成り立たないと京郷新聞とのインタビューで言う:



“経済開発計画の目標と実績の間に格差が大きく広げられていただけでなく政策方針とも行き違う場合があまた現われるなどエコノミックスポリシーとの因果関係が成立されないです. 例えば輸出売れ筋商品だった被服類は目標を果た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一方, 売れ筋商品ではなかった下着は被服類の 2倍に近い輸出実績を果たすなど政府の意図とは反対される結果が出ました. 製品の国際競争力が良かったのではなくアメリカが品物を買ってくれたからです.” (京郷新聞 3月 29日)

朴教授は当時輸出促進政策を広げていた限りないアジア国々の中で特に韓国だけが成果をおさめることができたことは外でないアメリカの政策徳沢だったと主張する. ベトナム戦以後韓国を反共の堡塁にしてアメリカが積極的に韓国に投資した結果というのがだ.


しかし既存の資料の中にはこのような観点と相反する視覚の物も存在する. 1976年コリアゲートスキャンダルによってアメリカ議会の小委で 1978年作成したいわゆる "フレーザー報告書"の内容がそうだ.


フレーザー見てからは経済関係を含んだ韓米関係に対して包括的に分析しているのに見てからは援助, 自問などを提供したこと以外に韓国の経済開発でアメリカが大きい役目をしなかったと分析している. 特に 70年代からの経済開発過程ではアメリカの自問もなかったし援助も些細だったと言う.


朴正煕時代の経済成長をただ一つの要因だけが牽引したと主張するのは無理だ. しかし迫近号教授の申し立てる観点がこれに対する論争をより豊かにさせることはできそうだ



漢江の奇蹟は親日派朴正煕も日本も無関係だというのが

アメリカプレ誌魚譜古書と日本大学教授の研究結論w



^^



http://www.huffingtonpost.kr/2017/03/29/story_n_15679470.html

좋아요·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

댓글 ( 0 )

게시물 목록

2,502,437

  1. JA 255 executioner3
  2. JA 255 JAPAV57
  3. JA 255 JAPAV57
  4. KO 28 大北韓国
  5. KO 255 sayoonarayo
  6. KO 255 MabikiSesame
  7. JA 255 executioner3
  8. JA 255 半島類人猿調教師
  9. JA 255 bluebluebluu
  10. 조회수 : 226
    JA 255 wagonR
  11. 조회수 : 234
    KO 255 gara
  12. JA 255 executioner3
  13. 조회수 : 449
    JA 255 ひょうたんでしょう
  14. JA 255 ひょうたんでしょう
  15. JA 255 半島類人猿調教師
  16. JA 255 terara
  17. JA 255 executioner3
  18. JA 255 mikanseijin
  19. KO 255 bibimbap
  20. JA 255 tera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