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와키자카가 본 이순신
와키자카는 일본의 명장중의 명장으로
그의 성격은 명예를 중시하고 차를 좋아했으며
함부로 살생을 하기 보다는 덕을 베푸는 장수라고 합니다.
이 장수는 이순신 장군님과 한산도 대첩 이후로
큰 충격을 먹고 6일을 굶었다고 합니다.
" 나는 이순신이라는 朝鮮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번 이긴 그저 그런
朝鮮 장수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이순신은
그 어떤 장수와도 달랐다.
나는 두려움에 떨어 음식을 며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써
나의 직무를 다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갔다"

2. 영국 해군준장 G. A. Ballard 본 이순신
"이순신은 서양 사학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순신은 전략적 상황을 널리 파악하고
해군전술의 비상한 기술을 가지고
전쟁의 유일한 참 정신인 불굴의 공격원칙에
의하여 항상 고무된 통솔원칙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의 맹렬한 공격은 절대로 맹목적인 모험이 아니었다.
영국인에게 넬슨과 견줄 수 있는 해군제독이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기는 힘든 일이지만
이순신이 동양의 위대한 해군사령관
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3. 명의 사신이 운덕이 본 이순신
"하루는 어두운 밤 눈이 몹시 내리고 그 바람이 칼날 같아서
살결을 찢는 듯 하니 감히 밖을 나갈 수가 없더라
그러한데 통제사영감(이순신 장군님)이 그 속을 홀로 지나가니
도착한 곳은 왜놈이 잡혀있는 현장이 아니던가.
밖에서 보니 통제사 영감은 그 왜군에게
명심보감중 효행편을 읽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음날 알아보니 그 왜군의 나이는 15세
10살의 어린 나이에 병사가 되어 포로로
잡혀있을때 5년 동안 거두었다고 한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지만
저 두사람을 보면 어찌 서로를 원수라 하겠는가?

4. 명의 도독 진린이 본 이순신
명나라의 황제 신종(만력제)은
진린도독으로부터
한통의 서신을 받습니다.
(황제폐하 이곳 朝鮮에서 전란이 끝나면
朝鮮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朝鮮국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 하게 하소서..
신이 본 이순신은 그지략이
매우 튀어날뿐만 아니라
그 성품과 또한 장수로 지녀야할 품덕을 고르 지닌 바,
만일 朝鮮 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황제 폐하께서
귀히 여기신다면 우리명(明)국의 화근인
저 오랑케를 견제할수 있을뿐 아니라,
저 오랑케의 땅 모두를 우리의 명국으로
귀속시킬수 있을것이옵니다.
朝鮮국왕은 원균에게 朝鮮통제사 지위권을
주었으나 그 원균이 자만심으로 인하여
수백척에 달한 함대를 전멸케 하였고
단 10여척만이 남았으메 당황한 朝鮮국왕은
이순신을 다시불러 朝鮮수군통제사에게 봉했으나,
이순신은 단 한번의 불평없이 충의를 보여
10여척의 함대로 수백척의 왜선을
통쾌하게도 격파하였나이다.
진린은 이순신 장군님의 전사 소식을 듣고
세번이나 쓰러지면서 통곡했던 인물
5. 일본 해군 준장
사토 - 데쯔라로가 본 이순신
"절세의 명장 이순신"에서 "장군의 위대한 인격,
뛰어난 전략, 천제적인 창의력, 외교적인 수완등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절세의 명장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해군장군인 나로서는 평생을 두고
경모하는 바다의 장수로 네덜란드의
Ruyter Michiel과 朝鮮의 이순신이 있다.
그 중에서 갑과 을을 정하라 한다면
서슴치 않고 이순신을 갑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영국의 넬슨이 세계적인 명장으로 명성이 높은 것은
누구나 잘 아는 바이지만 그 인격에 있어서나
청의성에 있어서는 도저히 이순신의 짝이 될 수 없다."

6. 일본 해군제독, 토고 헤이하찌로
"나를 넬슨에 비하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하는 것은 감당 할 수 없는 일이다"
7. 일본 석학, 토쿠토미 테이이찌로가 본 이순신
이순신의 죽음은 마치 넬슨의 죽음과 같다.
그는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이기었다"

8. 역사 작가, 시바 료타로가 본 이순신
"이순신은 청렴한 인물로, 그 통솔력과 전술능력으로 보나
충성심과 용기로 보나이러한 인물이 실재했다는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상적 군인이었다.
영국의 넬슨 이전에 있어서의 이름난 장수이기도
하거니와 세계 역사상 이순신만한 사람이 없으며,
이 인물의 존재는 朝鮮에 있어서 까지도 잊혀지지 않겠지만,
도리어 일본 사람의 편에서 그에게 존경심이 계승되어,
명치유신 기간에 해군이 창설되기까지
하였으니, 그 업적과 전술이 연구되어져야 한다.
9. 일본 해군 전략 연구가, 가와다 고오가 본 이순신
도고가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면
그 발가락 한 개에도 못 따라간다.
이순신에게 넬슨과 같은 거국적인 지원과
그 만큼의 풍부한 무기와 함선을 주었다면,
우리 일본은 하루 아침에 점령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대단히 실례인 줄알지만, 한국인들은 이순신 장군을 성웅이라고
떠받들기만 할 뿐 그 분이 진정으로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하는 것은 우리 일본인보다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10. 朝鮮 제 22대왕
정조가 본 이순신
내 선조께서 나라를 다시 일으킨 공로에
초가 된 것은 오직 충무공 한 분의 힘,
바로그것에 의함이라.
내 이제 충무공에게 특별한 비명을 짖지 않고
누구 비명을 쓴다 하랴.
당나라 사직을 안정시킨 이성과
한나라 왕실을 회복시킨
제갈량을 합한 분이 충무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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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나라의 해군 사관 학교에서는 생도들에게
역사적으로 유명한 세계 4대 해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1) B.C. 480년 그리스의 데미스토클레스제독의 살라미스해전,
2) 1588년 영국 하워드 제독의 칼레 해전,
3) 1592년 거북선을 앞세워 승리를 거둔 이순신제독의 한산대첩,
4) 1805년 영국 넬슨제독의 트라팔가 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