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보 제1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한국의 불상
먼저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의 시원(始原)을 살펴보면 인도의 경우 그 서북방인 오늘의 파키스탄 즉 간다라 지방을 중심으로 불상이 처음으로 발생되었을 때 반가사유상의 양식이 나타난다.
반가사유상은 나무나 금동, 돌 또는 흙으로 조성되어 법당 안에 안치되었던 사실은 다른 불상, 보살상과 똑같으나 반가사유상이라 부르는 것은 두 가지 큰 특징 때문이다. 첫째는 그 불상의 자세를 볼 때 둥근 의자에 걸터 앉아 오른쪽 발 하나를 올려서 다른 쪽 다리 무릎위에 얹고 있다. 둘째는 오른손을 들어서 손끝을 턱에 댐으로써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을 나타내는 점이다.
전자의 양식을 ‘반가(半跏)’양식이라 부르고, 후자를 ‘사유(思惟)’양식이라 부르고 이를 합하여 ‘반가사유’양식으로 부른다. 그리고 이 불상이 미륵보살로 추정되므로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라 부르고 있다.
한국은 삼국시대 6세기 중반부터 통일신라 초까지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다 한다. 한국 반가사유상의 최고 걸작은 평양 천리 출토 금동 반가사유상(국보 제118호)과 백제인의 예술 혼이 깃든 방형 대좌 금동 반가사유상(보물 331호)과 금동 반가사유상(국보 제78호), 금동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출토 석조 반가사유상(보물 제 997호)등이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일본이 국보 제1호로 지정하여 세계에 자랑하고 있는 교토(京都) 하치오카정(蜂岡町)에 위치하고 있는 현 코류지(廣隆寺) 소유 목조 반가사유상이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불상이라는 사실이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신라 제26대 진평왕(眞平王 : 579~632)은 603년에 훌륭한 목조미륵불상을 당시 일본의 33대 스이코(推古:6세기말~7세기초)천황에게 보내 주었다. 이 불상의 명칭은 ꡐ보계(상투)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다. ‘우는 미륵불’이라는 애칭을 가진 이 불상은 그 당시부터 현재까지 일본의 코류지(廣隆寺)에서 모시고 있다.
일본서기 등의 기록에는 스이코 천황 11년(603) 11월 1일 성덕태자가 조신들에게 “나는 거룩한 불상을 가지고 있소, 이 불상을 모시고 싶은 사람이 없겠소?”하고 물었다. 이때 진하승(秦河勝)이 나서며 말하기를, “신이 모시도록 하겠나이다.”라고 했다. 진하승은 불상을 받아 하치 오카지를 지었다. 지금의 코류지(廣隆寺)이다.
진평왕은 616년 두 번째로 또다시 훌륭한 신라의 목불 미륵상을 스이코 천황에게 보내 주었다는 사실이 ‘일대요기(一代要記, 13세기 성립)’에 기록되어 있다.
진평왕은 당시 불교 국가 건설을 간절히 바라던 스이코 천황을 도와주기 위해 훌륭한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보내 주었고, 두 번째는 스이코 천황이 616년 5월 3일 병석에 누웠다. 성덕태자는 여왕의 쾌유를 빌기 위해 가람 건축과 성스런 불상을 소원했다. 그래서 진평왕이 높이 2척의 금불상(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보내주시어 하치오카지에 모셨다. 이 불상이 오늘날 일본이 국내외에 자랑하는 국보1호‘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다.
이 미륵상은 높이 84cm의 나지막하고 경북 봉화지방에서 생산되었던 춘양목(赤松)으로 만들어 졌고 당시에는 도금을 해 금불상으로 보냈으나 지금은 도금했던 흔적만 남아 있다.
따라서, 이 불상은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에서 출토된 반가사유상과 양식이 흡사하고 춘양목의 주산지가 봉화군이고 당시 신라 땅이 였으며, 당시 경북 북부지역이 가장 큰 규모의 재래시장(내성장)과 각종 장인(匠人)이 많았다는 점 등을 미뤄 짐작컨대 이 불상이 봉화에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가능케 한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이 세상에서 이처럼 평화를 상징하고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을 잘 나타낸 불상은 없다”고 극찬하였다 한다.
결과적으로 유구한 역사 속에 우리 선조들의 얼과 혼, 그리고 체취와 숨결이 배인 찬란한 민족 문화유산이 일본의 국보 제1호로 지정 존앙․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자.
이것이 일본 국보1호
코류지 반가사유상
’일본의 미소’라 불리며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며 자랑스러워 하는 목조불상이다
하지만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우리국보 83호 철조반가사유상과 매우 흡사하다
일본학자들은 일본의 불상을 한국이 훔쳐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 재료가 일본에서 자생하는 금송과 일본적송이 아니라 한국적송이라고 밝혀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