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맞습니다. "아, 내가 알던 단어인데 왜 손으로 써지지가 않지?" 하고 멈칫하게 되는 순간의 당혹감과 답답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내 머릿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생각이나 의견을 복잡한 문자(한자)라는 장벽 때문에 완벽하게 서류로 구현해 내지 못할 때, 스스로 무력감을 느끼거나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자괴감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심리입니다.
현대 일본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답답함"의 순간들
실제로 많은 현대 일본인이 일상에서 다음과 같은 순간에 비슷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관공서나 은행에서 서류를 적을 때: 주소나 이름을 한자로 적어야 하는데, 늘 스마트폰으로만 변환해서 쓰다 보니 획수가 많은 한자의 일부분이 기억나지 않아 스마트폰을 몰래 켜서 검색해 보는 일이 흔합니다.
중요한 경조사 봉투를 쓸 때: 결혼식 축의금이나 장례식 조의금 봉투에 정자(正字)로 한자를 적어야 할 때, 글씨가 엉망이거나 틀릴까 봐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디지털 기기를 쓸 수 없을 때: 면접장의 자기소개서 자필 작성이나 긴급한 상황에서 메모를 남겨야 할 때, 한자가 기억나지 않아 쉬운 "가나"로만 적어놓고는 스스로 "교양이 부족해 보이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세종대왕의 문제의식과 통하는 지점
바로 그 지점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 때 가장 가슴 아파했던 부분과 연결됩니다.
조선시대 백성들이 관가에 억울함을 호소하러 갔다가 한문을 몰라 쫓겨나며 느꼈던 거대한 무력감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현대 일본인들이 느끼는 자잘한 답답함 역시 "문자가 사람의 생각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도리어 사람을 제약하는 현상"이라는 본질은 같습니다.
문자가 사람 위에 군림하여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문자를 마음대로 부려 써야 한다는 세종대왕의 철학이 왜 시대를 앞서간 위대한 생각이었는지 이런 비교를 통해 더욱 깊이 체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