メインへ

KJCLUB 日韓文化交流へようこそ。

道徳を教える

閲覧数 : 339
KO 255 Wildboy 2,675,453 / 2,811,753

깉긫귽(뽭뵁궋 : 귝궽궋)궕뜧먥궠귢궫궞궴궼귏궬뷨봏귖궶귞궶궋.

1200봏뜝돞뮝렄묆궔귞럑귏궯궫깉긫귽(뽭뵁궋)궼뭞궕댶렩믟뢜귩뺖궖됷궯궲룛궴덇룒궸뽭귩됡궟궢궫뚣, 궶궔궳귖딠궸볺귡룛궴뙅뜢귩궥귡븮뢐궳궇궯궫. 궩궻뚣궳뫚띟귟궻렄덇궰궻뛱럷궳귖뒁궢귔귝궎궸궶궯궫궢, 묿귖릕궺궲뿀궶궋룛맜궼릐딠궶궋궞궴궳뙥궶궠귢궲, 귔궢귣룛맜궻뺴궳뭞귩뫲궰븮뢐궳빾렲궠귢궲궢귏궯궫. 궩궻뚣궳궼딓뜢룛맜귖궞귪궶븮뢐귩뒁궢귔귝궎궸궶궯궫. 맼댰둎뺳궼궥궙맟빒뿎궸궰궶궕궯궫.

궩귢궳뼻렊(뼻렊)렄묆(1868~1912)궸궼뜎됄밒궶렅뙰궳 "깉긫귽(뽭뵁궋) 뗕~쀟"귩돷궛궫. 궩궻뚣궳롶떝럙몒귩뛎궘븕땩궢궫궕 1900봏룊붦귏궳귖_뫚궳띟귟(띟귟 : 귏궰귟) 렄쁈궸{뛱궠귢궫.

16맊딬 뼻궕긐깏[깛, 뼻뜎둇듶(뾤럔] 댥볦둇듶)궸뢯윋궢궲뱪귒궢궫 `썑궻럓귩`궋궫 `썑}뙏 궻뭷궻 `썑귖 돷댼귩뭶궲궋궶궋. 궫궬`썑뱡뙒궻뭷궻 `썑궼륦궕븹귦귢귡 뤵댼귩뭶궲궋귡. 궢궔궢 믅륪럊 뛱쀱}귘긂^긇궴Hiroshige(됊먯뛎뢣)궻붎됪궳뙥귡궕, `뱙궻몜땉궼륦궕궥귊궲븹귦귢궶궋뭒궋궻궬궯궫. 뙥귡릐궕궖귏귟닽궘궲륦븫빁귩븹궯궲귘궯궫궞궴궳뙥뱰궕궰궘.

1711봏 믅륪럊 뛱쀱}궼뺡궢렅묉궸, 궇귟궻귏귏`궋궫둋궳궇궯궫궞궴궬. `뱙귞궼륦귖궥귊궲븹귦귢궶궋뤵뭶덇궰궬궚긊[깑궸궢궲믅귟귩뺖궖됷궯궫궻궬.

뭷뜎`궻댷뢟뚣뭶븿(궖귖궻)맜뛱댴, 뜫뾹(뜫뾹), 깉긫귽(뽭뵁궋)궴궋궎뿉귢귡 맜빒돸궻댷륚궴뜊s궢궲 볷{ 뭞럔귞궼 돷댼귩뭶궶궘궶궯궫. 궩귢궳궞궩룛귩뙥귡뮳궭궸 맇뜌귩몚궯궲뭶븿(뭶븿)맜뛱댴, 뜫뾹, 깉긫귽(뽭뵁궋)귩렳뛱궸댷궥궻궳궼궶궋궔. 궬궔귞뫜릐궻뜎귩뿩묭궢궶궕귞귖벫빶궸쀧딽귩롦귟뫓궑궲돷댼귩롦귟뫓궑궲뭶궶궔궯궫. 뤵댼귩뭶궶궋롰뫎궼뫝궔궯궫궢뜞귖궇귡궕, 돷댼귩뭶궶궋뼬뫎궼 볷{궕 뾄덇궥귡.

뭶븿(궖귖궻) 귖 뭷뜎`궕댷뢟궢궶궕귞`롻궢궫 갾릆럔궻볫{궻븓귩뵾빁궳먟궯궲뭷듩궸뙄귩궘궙궯궲벆귩볺귢궲멟궴뚣귩뙅귪궳뚿궼갿 됗됂궻븵궔귞럑귏궯궫. 궿궫궥귞맜뛱댴귩뒁궢귔궫귕궸뛩댡궢뢯궢궫븵궳 궖귖궻 렔뫬궕맜뛱댴궻궫귕궻덇뢕(덇뢕) 궴뙻궎. 궥궶귦궭맜뛱댴뾭뷼귩릆궸궔궚궲믅궋궶궕귞믅귟됡궗귡뭞궻뾴땫궕궇귢궽궋궰궳귖  돒궣귡뼖귩렃궢궲궋궫궻궬.

듰븵궼긚긇[긣궴`깈긕깏볫궰궳빁궚귞귢궲궋귡궕뭶븿궼뛎궋븓뭤귩궘귡궘귡뒱궘렜궬. 돺궴궋궯궲귖|귽깛긣궼OB(뫱 : 궓귂)궬. 븷뫱귒궫궋궶뛎궋뫱궶궻궸`깈긕깏궻븵궻뙅귂뷧궴궼댾궋궓븷궳떦궻돷귏궳귩듴궟궴궘귡귔. 궞궻OB(궓귂)궠궑됶궚귢궽뭶븿(궖귖궻)궼뒶멣 "븧룶됶룣"궸궶귡.

룛뫬귩귝궘뙸귦궥귝궎궸궗귙궯궴뵛귟븊궚궫귝궎궶뭶븿(뭶븿)궻귏궫덇궰붼뼤궼 "궻뭷"궸궇귡. 볷{릐궫궭궼궦궋귆귪멟궔귞 뭶븿(뭶븿)귩뚿귩렄궋궰귖긩[긬깛궬궯궫궴뙻궎. 궞궞궸뫮궥귡궓맫뙉궕귏궭귏궭궬.

룛뫬궻멄궸|귽깛긣귩뜃귦궧궫릐갲궼긬깛긡귻[멄귩뙸귦궠궶궋궫귕궸궲귪궔귞뿪궢궫궴궋궎쁞귖궇궯궲, 롰뫎붖륛궻궫귕궻럅뺴궶궋 "긕깇긞긏`긃긞긏"궬궯궫궴궋궎빁먏귖궇귡. 뼀{(뼀{) 렄묆궸볺궯궲봦뵶듩궻궚귪궔궕궿궵궘궶귟궶궕귞뭞궫궭궻궠귪궕귏궥귏궥뒩궘궴, 룛맜궫궭궼궋궰궵궞궳귖듫똚귩렃궰귝궎궸뼖귩렃궢궲믅궯궫궴궋궎쁞귖귖궯궴귖귞궢궋.

뜫뾹(뜫뾹)궼]뚈(]뚈)렄묆(1603`1867봏)귏궳궠궔궻귍귡. "}긏깋궸(뼃둋)"궴궋궎뱰렄궻덦됪궸궼뭞룛궫궭궕귖궰귢궲돴먵맜뛱댴귩궥귡뤾뽋궕쁈뜙밒궸`롃궠귢궲궋귡. 듊뒁궕귩맟궢궫궴궋궎]뚈렄묆궻 맟빒뿎궼륂렞귩뮪뎭궢궫궴뙻궎궻궕쀰럍둾롌궫궭궻쁞궬. (뭶븿궼벍궘긹긞긤갷뜫뾹궼]뚈렄묆듊뒁궻뤭뮙)

뭶븿긩[긬깛-붖륛먣궴궼돺귞궻듫쁀궕궶궋궞궴궕뭶븿궕띿귞귢궫먪봏궻멟, 빟댝렄묆(빟댝렄묆)궸궼빟쁝궶렄딖궬궯궫. 먰몚궕궶궔궯궫궕, 돺궻릐궕귪궳뛱궯궲뺚궎궫귕궻붖륛궸뼯뭷궸궶궯궫궴궋궎쁞궔.

갾롰뫎붖륛궻궫귕궻럅뺴궶궋긕깇긞긏`긃긞긏궳궇궯궫갿? 갾뼀{렄묆 궸볺궯궲봦뵶듩궻궚귪궔궕궿궵궘궶귟궶궕귞뭞궫궭궻궠귪궕귏궥귏궥뒩궘궴, 룛맜궫궭궼궋궰궵궞궳귖듫똚귩렃궰귝궎궸뼖귩렃궢궲믅궯궫갿궶귞궩귢귌궵맯귏귢궫, 븗궕묿궬궔귖빁궔귞궶궋 럡맯럺궕궠귔귞궋궸궶궯궲 딲뫎궸궶궯궫궴렔귞뵏륉궥귡돶궬. 궇궻돶궼덇븫궬궚럷렳궬. 볷{궸궼땸귡 먪봏듩 븗귩믦귕귡궞궴궕궳궖궶궋 럡맯럺궕궇귅귢궫귟궢궫궕, 뒁궢귪궳뙥귡궴궳궖궫뙅됈궳궇궯궲, 붖륛궻궫귕궸궸븿떢궋궳 럡맯럺귩맯럀궢뢯궢궫궻궳궼궶궋궴궋궎쁞궬. 궳궼궶궚귢궽봦뵶듩궻궚귪궔귩 갻뭯뫸뛼궋갽(? 깋귽긲 2렅묈먰궳궠귔귞궋귩뭫궋궲뙸궢궫뙻뾲궬. 볫뱗궴빓궘궞궴궕궳궖궶궋궼궦궬궔귞, 귝궘돬궑궲궓궘귝궎궸) 궠귔귞궋궫궭궼뚣롨궸멺귪궳]깛긐긩귞궸궠궧궫궴궋궎궞궴궔. 궞귢궼궠귔귞궋둏땳궻뫔띪댰`귩뼰럨궥귡뙅_궬. 궳궼궶궚귢궽]깛긐긩궕궥궶귦궭궠귔귞궋궳궇궯궫궴궋궎궞궴궔. 궞궻뙻뾲궼럷렳궬. 쁀귢뜃궋궻맯귪궬럔궼럅뺴궶궘럡궻럔궳롷궚볺귢궶궚귢궽궶귞궶궔궯궫궻궬.

땸귡먪봏궻듩, 볷{궼궋궰귖|긯깄깑[긘깈깛궳궇궯궫. 궩궻뙅됈궋궰귖긌귺궸쉇궋궬. 뛼쀭궴 뮝멞귩륬볺궢궫 `썑궼빫귩뾆먩밒궸뱪귒궢궫궢, 뮝멞궴 뮝뛵뻜댲궥귡뱰렄궸귖빫둴뺎궸뙆듻궳궇궯궫. 2렅묈먰귖 볷{궕궇귅귢귡 릐뚿귩롥뫬궳궖궶궘궲딳궞궢궫궴럙궎궞궴궕 맻돚궻럨둶궬. 묈쀊렪떾궴 딷됱궸뫮궥귡됶뙂랉궳 륚뼬뭤귩묭롦궢귝궎궴럙궯궫궴. 렳궼 볷{궻롥뮗귩궩궻귏귏뗡궣궫궻궬.

긬깛긡귻[멄귩뙸귦궠궶궋궫귕궸긬깛긡귻[귩뭶궶궔궯궫귞, 뙸묆볷{룛묪귖긬깛긡귻[궶궢궸뭶븿귩뭶궶궚귢궽궶귞궶궋. 뭶븿(뭶븿)궼 뭷뱙궻 갾릆럔궻볫{궻븓귩뵾빁궳먟궯궲뭷듩궸뙄귩궘궙궯궲벆귩볺귢궲멟궴뚣귩뙅귪궳뚿갿궼븵궳뵯밯궢궫븸렜궬. 긩[긬깛궼릶먪봏궸궶궯궫 뭷뱙궻븮뢐궳궇궯궫궞궴궬.

됦궕뜎궕 뭷뱘궸볺궯궲뛱궯궲븓띿귟뺴귩떝궑궲궘귢궫궔귞, 댥멟궸궼궚궬귖궻궻붺귩궔궚궲궋궫. (쀱뱡궸궼궚궬귖궻궠궑뮸궢궔궯궫궕, 뭷뱘궸궼궩귢궳귖궚궬귖궻궼궋궫궼궦궬. 궚궬귖궻붺궳귖궔궚궶궚귢궽궩궻뒭궋룋궳뒳궑뢯궥궞궴궕궳궖궶궋궔귞) 궞궻뱰렄궔귞 뿉랦덇 맜빒돸귩뒁궢귪궳뙥귡궔귞 뚣묆궸볺궯궲뿀궲귖돷뭶귩뭶궶궔궯궫궻궬. 돺귝귟 갾릆럔궻볫{궻븓귩뵾빁궳먟궯궲뭷듩궸뙄귩궘궙궯궲벆귩볺귢궲멟궴뚣귩뙅귪궳뚿갿긂궴돺궻븵뭶궞궶궢귩{궢궲, 긬깛긡귻[멄 쁞궥궞궴궕궳궖귡궴궋궎쁞궔.

뮝멞믅륪럊궳궼궶궔궯궫귞, 귏궬 볷{뼬뫎궼뾿궸궶궯궲 땶먐딇릐귘벏뾩궸맊둉귩뺖궖됷궯궫릐듩궫궭궬.

릔묬궻뿉궕뢎귦궯궫뚣궳궇귡晨@ 45봏(1719), 댸듚(댸듚)궼믅륪롊궻맶뢲뒸(맶뢲뒸갋딯^귩뭆뱰궥귡듖뿚)궳볷{귩뛱궯궲뿀궲 갻긶깇깓긞긏(둇뾙^)갽귩럄궢궫.

맶뢲뒸댸듚궕묈띲(묈띯)궳뽞귩뭾궋궬궞궴뭷궻덇궰궕붯귞궻맟빒돸궳궇궯궫. 붯궼믅뽷뱳뢂귟볷{릐궔귞빓궋궲, 뮳먝뙥궫궞궴귩뱘묇궳 40뺂궻빒귩띿궯궲볷{릐궫궭귩궰궺궲딞뜎궻뚣뮧맢궸뺪뜍궢궫.

궩궻뭷덇궰귩뤢됳궥귡.




럡궻됄렦뺬뱳궼, 뻽붣볷궕쁒귢귡귏궳,

륷궢궋쁚똍궼귺긳깛궳뿀궲,

먎궻맻뫀궼뿞뽩궸뛱궘궻궺.

(궵궎궢궲븮뫋궼뷠궦뱯귩뱮궢궲뭞룛궕궴귪귍귩궥귡)
 

궩궎궢궶궋쀲뱳뱙쀪긾깛긐긌

原文を見る

도덕을 가르친다

요바이(夜這い : よばい)가 근절된 것은 채 백 년도 되지 않는다.

1200년경 왕조시대 부터 시작된 요바이(夜這い)는 남자가 이집 저집을 돌아 다니며 여자와 함께 밤을 지낸 뒤, 그중 마음에 드는 여자와 결혼을 하는 풍습 이었다. 그 후로 마을축제 때 하나의 행사로도 즐기게 되었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여성은 인기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오히려 여성 쪽에서 남자를 기다리는 풍습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후로는 기혼여성도 이런 풍습을 즐기게 되었다. 성의 개방은 곧 성문란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메이지(明治)시대(1868~1912)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요바이(夜這い) 금지령"을 내렸다. 그후로 유교사상을 널리 보급 했지만 1900년 초반까지도 농촌에서 축제(祭り : まつり) 때 공공연히 시행되었다.

16세기 明이 그린, 明나라 해안(揚子江 이남 해안)에 출몰하며 노략질하던 倭寇의 모습을 그린 倭寇圖券 속의 倭寇도 下衣를 입지 않고 있다. 다만 왜구도권 속의 倭寇는 엉덩이가 덮이는 上衣를 입고 있다. 하지만 通信使 行列圖나 우타카와 히로시게(歌川廣重)의 판화로 보건데, 倭奴의 상의는 엉덩이가 다 덮이지 않는 짧은 것이었다. 보는 사람이 민망해서 엉덩이 부분을 덮어준 걸로 짐작된다.

1711년 通信使 行列圖는 사실대로, 있는 그대로 그린 그림 이었던 것이다. 倭奴들은 엉덩이도 다 덮이지 않은 상의 하나만 걸치고 거리를 활보했던 것이다.

中國倭의 이주 후 기모노(きもの)성행위, 혼욕(混浴), 요바이(夜這い)라는 문란한 性文化의 이식과 병행하여 日本 男子들은 下衣를 입지 않게 되었다. 그래야 여자를 보는 즉시 寸刻을 다투어 기모노(着物)성행위, 混浴, 요바이(夜這い)를 실행에 옮길 것이 아닌가. 그러니 남의 나라를 약탈 하면서도 특별히 예의를 갖춰 하의를 갖춰 입지는 않았다. 上衣를 입지 않는 종족은 많았고 지금도 있으나, 下衣를 입지 않는 민족은 日本이 唯一하다.

기모노(きもの) 역시 中國倭가 이주하면서 전수한 “身子의 두 배의 옷감을 반으로 접어 중간에 구멍을 뚫어 머리를 넣고 앞과 뒤를 매어서 입은” 華夏의 옷에서 비롯 되었다. 오로지 성행위를 즐기기 위해 고안해낸 옷으로 きもの 자체가 성행위를 위한 일습(一襲) 이라고 한다. 즉 성행위용품을 몸에 걸치고 다니면서 지나가는 남자의 요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응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복은 치마와 저고리 두 개로 나뉘어 있지만 기모노는 넓은 천을 둘둘 감는 식이다. 뭐니 뭐니 해도 포인트는 오비(帶 : おび)다. 복대 같은 넓은 띠인데 저고리의 옷고름과는 달리 배에서 가슴 아래까지를 통째로 감싼다. 이 오비(おび)만 풀리면 기모노(きもの)는 완전 "무장해제"가 된다.

여체를 잘 드러내도록 꽉 동여맨 듯한 기모노(着物)의 또 한 가지 비밀은 "속"에 있다. 일본인들은 오래 전부터 기모노(着物)를 입을 때 항상 노팬티였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설이 분분하다.

여체의 선에 포인트를 맞춘 이들은 팬티 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아예 생략 했다는 말도 있고, 종족번식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바쿠후(幕府) 시대 들어 파벌간의 싸움이 심해 지면서 남자들의 씨가 점점 말라가자, 여성들은 언제 어디서든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녔다는 얘기도 그럴 듯하다.

혼욕(混浴)은 에도(江戶)시대(1603∼186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쿠라에(枕繪)"라는 당시의 음화에는 남녀들이 뒤엉켜 온천 성행위를 하는 장면이 노골적으로 묘사돼 있다. 환락이 극을 이뤘다는 에도 시대의 성문란은 상식을 초월했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얘기다. (기모노는 움직이는 침대…혼욕은 에도시대 환락의 상징)

기모노 노팬티-번식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 기모노가 만들어진 천년 전,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에는 평화로운 시기였다. 전쟁이 없었는데, 무슨 사람이 죽어 나가고 보충하기 위한 번식에 열중한단 말인가.

“종족번식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고육책 이었다”? “幕府時代 들어 파벌간의 싸움이 심해 지면서 남자들의 씨가 점점 말라가자, 여성들은 언제 어디서든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녔다”면 그렇게 태어난, 父가 누군지도 모르는 私生兒가 사무라이가 되고 貴族이 됐다고 스스로 실토하는 소리다. 저 소리는 일부만 사실이다. 日本에는 지난 千年間 父를 확정할 수 없는 私生兒가 넘쳐나긴 했지만, 즐기다 보니 생겨난 결과이지, 번식을 위해 필사적으로 私生兒를 생산해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니면 파벌간의 싸움을 ‘지체 높은’(? 라이프 2차대전에서 사무라이를 두고 표현한 말이다.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을 테니까, 잘 기억해두도록) 사무라이들은 뒷짐지고 종놈 들에게 시켰다는 것인가. 이것은 사무라이 계급의 존재 의의를 무시하는 결론이다. 아니면 종놈이 곧 사무라이 였다는 것인가. 이 말은 사실이다. 배우자가 낳은 자식은 어쩔 수 없이 제 자식으로 받아 들여야 했던 것이다.

지난 천년 동안, 日本은 언제나 인구과잉 이었다. 그 결과 언제나 기아에 허덕였다. 高麗와 朝鮮을 침입한 倭寇는 쌀을 우선적으로 노략질했고, 朝鮮과 朝貢貿易할 당시에도 쌀 확보에 혈안 이었다. 2차 대전도 日本이 넘쳐나는 人口를 주체 못해서 일으켰다고 보는 것이 西歐의 시각이다. 대량실업과 飢餓에 대한 해결책으로 植民地를 탈취하려 했다고. 실은 日本의 주장을 그대로 읊조린 것이다.

팬티線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팬티를 입지 않았다면, 현대 일본 여자들도 팬티 없이 기모노를 입어야 한다. 기모노(着物)는 中奴의 “身子의 두 배의 옷감을 반으로 접어 중간에 구멍을 뚫어 머리를 넣고 앞과 뒤를 매어서 입”는 옷에서 발전한 복식이다. 노팬티는 수천 년 된 中奴의 풍습 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中土로 들어가서 옷감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으니까, 이전에는 짐승의 가죽을 걸치고 있었다. (列島에는 짐승조차 귀했지만, 中土에는 그래도 짐승은 있었을 것이다. 짐승 가죽이라도 안 걸치면 그 추운 곳에서 버텨낼 수 없으니까) 이 당시부터 亂雜한 性文化를 즐기다 보니까 後代에 들어 와서도 속옷을 입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身子의 두 배의 옷감을 반으로 접어 중간에 구멍을 뚫어 머리를 넣고 앞과 뒤를 매어서 입”으면서 무슨 옷맵시를 찾고, 팬티線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朝鮮通信使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日本民族은 벌거벗고 舊石器人이나 다름없이 세계를 활보했을 인간들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인 숙종 45년(1719), 신유한(申維翰)은 통신사의 제술관(製述官·기록을 담당하는 관리)으로 일본을 다녀와 ‘해유록(海遊錄)’을 남겼다.

제술관 신유한이 오사카(大坂)에서 눈여겨 본 것 중의 하나가 그들의 성문화 였다. 그는 통역등 주위 일본인 으로부터 듣고, 직접 본 것을 토대로 40편의 글을 지어 일본인들을 꼬집고 귀국후 조정에 보고하였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나의 집 칠보등은, 밤마다 날이 새기까지,

새 낭군은 앞문으로 오고,

옛 서방은 뒷문으로 가네.

(왜 풍속은 반드시 등불을 밝히고 남녀가 잠자리를 한다)
 

그러지 말아라 열등 노예 몽키

いいね・コメントにはログインが必要です。

コメント ( 16 )

投稿一覧

2,675,453 / 2,811,753

  1. JA 255 KoreanOmeko
  2. KO 255 northsouthO
  3. JA 0 hamehame
  4. 2675444 納豆 1
    閲覧数 : 92
    KO 255 Wildboy
  5. JA 0 natumikan3
  6. 閲覧数 : 613
    JA 0 poepoepoe3
  7. 閲覧数 : 354
    KO 255 northsouthO
  8. JA 255 jap_av
  9. 閲覧数 : 114
    JA 0 mttri_mk
  10. 閲覧数 : 380
    JA 0 lan2
  11. JA 0 のりぴー
  12. 閲覧数 : 200
    KO 255 kim1957
  13. 2675453 閲覧中 道徳を教える 16
    閲覧数 : 339
    KO 255 Wildboy
  14. JA 0 ( ^e^) ya1988
  15. KO 255 northsouthO
  16. JA 0 lan2
  17. JA 0 ポイポイ
  18. 閲覧数 : 1,509
    JA 255 jap_av
  19. 閲覧数 : 164
    KO 255 Wildboy
  20. 閲覧数 : 251
    KO 255 sb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