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의궤
1. 세계 기록 유산
의궤는 의례 행사와 궤범을 합친 것으로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가 있을때 그 행사의
전체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여 왕에게 보고하는 보고서 형식의 책이다
조선 초기 의궤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으로 소실되거나 잃어버렸고 후기 의궤는 1866년 병인양요
등 서양의 침략이나 일제강점기로 수난을 겪으며 흩어져
의궤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 일본 궁내청 서울 대학교 규장각에 분산되어 소장되었다
145년만에 프랑스에서 조국으로 귀환한 조선왕조 의궤
孝章世子冊禮圖監儀軌
왼쪽 의궤는 왕이 열람해 보는 의궤 오른쪽은 분상용 의궤이다
의궤는 보통 5-9부 제작하는데 왕이 열람하여 보는 어람용 의궤 1부를 제외하고
의정부 예조 춘추관 江華府 五臺山 史庫를 비롯해 지방 史庫에 나누어 보관하였다
임진왜란 등 전란으로 부터 조선의 주요 고문서 등 자료의 소실을 막고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1782년 正祖는 강화도 행궁에 外奎章閣을 설치하고 이 곳에 조선의 중요 자료 고문서
도서 의궤 등을 옮겨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하였다
왕의 열람용 의궤를 이곳 강화도 행궁에 옮긴 것이 이 때의 일이다
그런데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의 外奎章閣에는 조선의 고문서 왕실 족보 의궤를 비롯해 약 6.000권의 책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이 外奎章閣을 프랑스軍이 불태우고 일부 의궤를 약탈해 갔다
당시 참전했던 프랑스 해군 장교 앙리 쥐베르는
이 곳에서 감탄하면서 볼 수 밖에 없고 우리(프랑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라고
(1873년 조선 원정기 )에서 썼다고 한다
왕실과 국가의 주요 행사를 의궤 형식으로 남긴 나라는 조선이 유일하다고 한다
이런 조선의 기록문화를 인정받아 2007년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의궤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의 546종 2.940책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287종 490책 이라고
한다
2. 의궤는
왕실의 혼인 장례 회갑연 世子책봉 등 여러 의례와 사신 접대 궁궐 건축 종묘 제례 등 국가의
주요 행사가 있을 때 반드시 그 행사의 전체 내용을 의궤 형식으로 기록하였다
의궤는 혼인 장례 회갑연 사신 접대 등 국가나 왕실에서 여러 행사가 있을 때 그 행사에 사용된
물품이나 복식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문자로 해석을 달아 제작하였다
회갑연 혼인 장례 등 국가나 왕실에서 반복적으로 거행되는 여러 행사의 全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함으로서 후세에 이런 동일한 행사가 있을때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따라서 의궤에는 행사의 全과정에서 동원된 인원 소요된 물품 각종 문서 및 업무 담당자
명단 경비 의식절차와 행사가 끝난 후 論賞 등 모두 기록되고 있어 복원도 가능하다
의궤는 활자본 필사본이 있는데 흑백의 활자본은 물품의 모양을 상세하게 알 수 없다는
단점이 천연색의 필사본이 제작되었다
혼인 회갑연 등 잔치 관련 의궤는 進饌의궤 또는 進宴의궤 라고 이름을 붙였다
3. 呈才女伶의 복식
그런데 임진왜란 이전 조선 초기의 건축과 복식을 알 수 있는 그림이 발견되었다

1577년 宮中契會圖
문인이나 선비들의 모임을 담은 그림을 契會圖라고 한다
이 契會圖는 宣祖 (재위 1567년~1608년 )때에 宣祖의 형 河原 河陵이 관직에
오른 것을 축하하는 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임진왜란 이전 조선의 궁궐 건축의 양식을 알 수 있다
붉은 색의 화려한 현어는 이전 고려시대 (1371년 고려 觀經序分變相圖 )에서 보았던
고려의 건축과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궁녀 (혹은 기녀)들의 모습을 보면 조선 중기 후기의 여인들 처럼 머리에 가체를
쓰지 않고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있다 고려시대 여인들 같다
1585년 宣祖朝耆英會圖
宣祖때에 국가의 원로들이 참석한 耆英會 모임을 기념하여 그린 것이다
조선에서는 太祖때 부터 정2품 이상 관직을 지낸 만70세 이상 사대부들을 예우하기 위해
耆老所를 설치하였는데 耆老所에서 마련한 연회를 耆英會라고 한다
매년 삼월 삼짇날 중앙절 날에 연회를 열어 이것을 기리고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圖畵署 畵員들을 시켜 연회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서 남기도록 하였다고 한다
1795년 園幸乙卯整理儀軌
궁중의 의례에 사용된 물품과 呈才女伶의 舞服
1902년 壬寅進宴圖屛의 일부
女伶들의 服式은 위 그림 16세기와 다르고 1795년 園幸乙卯整理儀軌에서 소개된 服式을
계승하고 있다
1829년 進饌儀軌 기록에 의하면
각 무용의 呈才女伶은
머리에 화관을 쓰고 草綠丹衣 黃綃單衫 속에 藍色裳 紅綃裳을 입고 紅緞金縷繡帶를 띠고
五彩汗衫을 끼고 草綠鞋를 신는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